2025/12 94

눈 위에 쓴 편지-이규보 李奎報

雪色白於紙 舉鞭書姓字 설색백어지 거편서성자莫教風掃地 好待主人至 막교풍소지 호대주인지눈빛이 종이보다 더욱 희길래 채찍 들어 내 이름을 그 위에 썼지. 바람아 불어서 땅 쓸지 마라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렴.-백어지白於紙: 종이보다 희다. 편鞭: 채찍, 막교莫教: ~로 하여금~하지 않도록 하게 해다오. 소지掃地: 땅을 쓸다.-눈 위에 쓴 편지이규보 李奎報,1168-1241눈길 어렵사리 친구 찾아왔더니 마실 가고 없다. 멍하니 섰 는데 발길 한 번 닿지 않은 눈 자리가 흰 종이인 양 깨끗하 다. "나 왔다 가네. 오늘 같은 날은 집에 좀 있질 않구서, 쯧쯧 쯧." 채찍을 들어 눈밭 위에 이렇게 써놓고 발길을 돌린다. 올 려다보면 푸르게 시린 겨울 하늘, 이따금 눈보라는 말발굽을 휘감고 지나간다. 바람아 조금..

카테고리 없음 2025.12.12

갈생(葛生)-시경.당풍(唐風) 11.

갈생(葛生)-시경.당풍(唐風) 11. 葛生蒙楚 蘞蔓于野 갈생몽초 염만우야予美亡此 誰與獨處 여미망차 수여독처葛生蒙棘 蘞蔓于域갈생몽극 염만우역予美亡此 誰與獨息 여미망차 수여독식角枕粲兮 錦衾爛兮 각침찬혜 금금란혜予美亡此 誰與獨旦 여미망차 수여독단夏之日 冬之夜 하지일 동지야百歲之後 歸于其居 백세지후 귀우기거冬之夜 夏之日 동지야 하지일百歲之後 歸于其室 백세지후 귀우기실-풀이 칡이 나서 가시나무를 덮고 덩굴이 들까지 뻗어가네내 사랑은 여기 없어 홀로 지내는데 뉘와 함께 하리오칡이 나서 멧대추나무를 덮더니 덩굴이 나라에 뻗치네내 사랑은 여기 없어 홀로 쉬는데 뉘와 함께 하리오쇠뿔 베개는 깨끗하고 비단 이불은 곱네내 사랑은 여기 없어 홀로 지새니 뉘와 함께 하리오여름 날 겨울 밤백년이 지나면 그 거처에 돌아갈까?겨울 ..

카테고리 없음 2025.12.12

이렇게 될줄 알면서도-조 병화

이렇게 될줄 알면서도-조 병화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나의 작은 감정들이소중한 당신의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벗이 있어야 했습니다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눈치를 보면서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나보다 앞선 벗들이인생을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나는 당신을 믿고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살아 있는 것이 ..

카테고리 없음 2025.12.11

石竹花-李奎報

節省此君高 花開兒女艷 절초차군고 화개아녀염 飄零不耐秋為竹能無濫표령불내추 위죽능무람절개는 대나무인 양 드높고 꽃 피면 어여쁜 아녀자인 듯. 흩날려 가을은 못 견딘대도 대나무 되기엔 모자람 없네석죽화石竹花: 패랭이꽃. 초肯: 닮다. 비슷하다. 차군此君: 대나무의 이칭. 염艷: 곱다. 아리땁다. 표령飄零: 바람에 나부껴 땅에 떨어짐. 불내不耐: 못 견디다. 무람無濫: 외람됨이 없다. 부족하지 않다.*패랭이꽃-이규보 李奎報, 1168-1241산길에 패랭이꽃이 피었다. 패랭이꽃의 이름은 석죽화다. 1구 의 차군(此君)은 대나무의 별칭. 왕휘지(王徽之)가 집 둘레에 대나무를 심어놓고 "어찌 하룬들 차군(此君)이 없을 수 있으랴!" 했대서 나왔다. 왜 이 가녀린 꽃에 석죽(石竹)이란 굳센 이름을 붙였을까? 대나무처럼..

카테고리 없음 2025.12.11

유체지두(有杕之杜)-시경.당풍(唐風) 10.

유체지두(有杕之杜)-시경.당풍(唐風) 10. 有杕之杜 生于道左 유체지두 생우도좌彼君子兮 噬肯適我 피군자혜 서긍적아中心好之 曷飮食之 중심호지 갈음식지有杕之杜 生于道周 유체지두 생우도주彼君子兮 噬肯來遊 피군자혜 서긍래유中心好之 曷飮食之 중심호지 갈음식지-풀이 우뚝 선 팥배나무가 길 왼편에서 자라네그 님이 깨물며 기꺼이 나를 찾아주니속으로는 좋지만 어찌 그걸 마시고 먹으랴우뚝 선 팥배나무가 길 모퉁이에서 자라네그 님이 깨물며 기꺼이 와서 노시니속으로는 좋지만 어찌 그걸 마시고 먹으랴杕(체) : 홀로 서 있다. 나무가 우뚝 서 있는 모양有杕는 杕然, 참조杜(두) : 막다. 끊다. 팥배나무. 콩배(杜梨)噬(서) : 깨물다. 어디에 닿다, 미치다(逮), 자전에서는 噬肯適我(서긍적아)를 ‘기꺼이 나를 찾아주심에 이..

카테고리 없음 2025.12.11

해도 달도 나도 간다-​최 명운

​어젯밤에 하늘을 바라다봤다이미 단풍으로 물든 산하해와 달이 머물다 간 곳차분한 밤하늘 저 달스산하지만 백야의 구름사이로 잘도 흐른다​아아, 보이는구나 세월의 흐름저 달빛 아래 묵묵한 산줄기수천 번 밤과 낮을 견디며떠나간 모든 것들을 기억할까아니, 그저 말없이 받아들일까​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는정해진 궤도 따라 걸었을 뿐붉게 물든 잎새 마지막 숨결도바람결에 실려 이제 내려앉는다모두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나 또한 그리 가야 할 길이기에이 밤, 홀로 고요히 깨달으니해도 달도 미련없이 저리 가거늘어찌 나 홀로 머뭇거릴 수 있으랴다시 밝아올 내일을 기약하며차분히 이 밤을 보내노라아니 다시 돌아오겠지만조용히 마음 속 영상에 담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5.12.10

안개꽃 당신-정 연복

안개꽃 당신-정 연복 햇살 밝은 베란다 창가에 앉아당신을 생각합니다한겨울 추위에 얼어붙은온 누리의 구석구석은은한 생명의 빛을 선사하는저 눈부신 불덩이언제였던가가끔은 외로움으로 그늘졌던나의 고독한 청춘에당신의 존재가 햇살처럼 와 닿은 그때안개꽃 같이 말없이 화사한당신의 모습을 살며시 훔치며나의 심장은 한순간 멎는 듯했지그렇게 우리는 만나마음과 마음을 잇대어행복한 사랑의 불꽃을 피웠네 장밋빛 불타는 사랑의 계절은 지나어느새 우리의 사랑살이에도세월의 그림자가 꽤 길게 드리웠지만 오!첫사랑 그 시절의우리의 티없이 순수했던 사랑만은영원히 변함없으리

카테고리 없음 2025.12.10

北山雜題3-李奎報

3山人不浪出 古逕蒼苔沒 산인불랑출 고경창태몰應恐紅塵人 欺我綠蘿月응공홍진인 기아록라월옛길3산 스님 함부로 나오질 않아 옛길은 푸른 이끼 덮여 있네.티끌세상 사람 올까 염려해서니 여라 넝쿨 달빛이 나를 속였네.낭출浪出: 함부로 제멋대로 나오다. 고경古逕: 해묵은 오솔길, 창태蒼苔: 프른이끼홍진인紅塵人: 티끌세상의 사람, 기아欺我: 나를 속이다. 녹나월綠蘿月: 초록색 여라 넝쿨 사이를 비치는 달빛.*옛길이규보 李奎報, 1168-1241절집 찾아 올라가는 옛길이 푸른 이끼에 덮여 있다. 이대로 가면 절집은커녕 태고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만 같다. 들어가는 이 없고, 나오는 이도 없다. 이따금 세상에서 마음 다친 나그네만 길을 몰라 서성일 뿐이다. 혹 스님은 나 같은 속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제 손..

카테고리 없음 20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