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벗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雪中訪友人不遇》
雪色白於紙 舉鞭書姓字
설색백어지 거편서성자
莫教風掃地 好待主人至
막교풍소지 호대주인지
눈빛이 종이보다 더욱 희길래 채찍 들어 내 이름을 그 위에 썼지. 바람아 불어서 땅 쓸지 마라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렴.
-백어지白於紙: 종이보다 희다.
편鞭: 채찍,
막교莫教: ~로 하여금~하지 않도록 하게 해다오.
소지掃地: 땅을 쓸다.
-눈 위에 쓴 편지
이규보 李奎報,1168-1241
눈길 어렵사리 친구 찾아왔더니 마실 가고 없다. 멍하니 섰 는데 발길 한 번 닿지 않은 눈 자리가 흰 종이인 양 깨끗하 다. "나 왔다 가네. 오늘 같은 날은 집에 좀 있질 않구서, 쯧쯧 쯧." 채찍을 들어 눈밭 위에 이렇게 써놓고 발길을 돌린다. 올 려다보면 푸르게 시린 겨울 하늘, 이따금 눈보라는 말발굽을 휘감고 지나간다. 바람아 조금만 잠잠해다오. 주인이 돌아와 내가 남긴 편지를 읽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