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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七先生詩畵帖 2

水陸草木之花,可愛者甚蕃焉,晉陶淵明獨愛菊,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予獨愛蓮出於淤泥而不染,濯清漣而不妖,中通外直, 不蔓不枝,香遠益清,亭亭淨植,可遠觀而不可褻翫焉。 予謂菊花之隱逸者也,牧丹花之富貴者也,蓮花之君子者也, 嚏,菊之愛,陶後鮮有聞,蓮之愛,同予者何人,牧丹之愛,宜乎眾矣。물과 땅에 자라는 풀과 나무의 꽃 중에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매우 사랑했다.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하노니, 진흙 속에서 나오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의 속은 비고 밖은 곧고, 덩굴도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이 물 가운데 서 있으며,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고 가까이 가서..

카테고리 없음 2025.07.06

겸재의 七先生詩畵帖 1

칠선생시화첩 七先生詩畵帖정선 조선, 1746년 종이에 수묵담채 17면 각 23.5×15.2 cm 삼성문화재단중국 송(宋)대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額)·정호(程類)·정이(程頭).장재(張載)·소옹(邵雍) 5인의 시의 (詩意)를 담은 그림에무이산(武夷山) 전도,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주희(朱熹) 의 시 「무이도가 (武夷權歌)」를 그린 그리고 조선조 성리학의 대가 이황(李滉)을 그린 가 수록되어 있는 화첩에박필기 서문 朴弼琦 序文 붙인 도첩이다.총 17면으로 맨 앞에는 박필기(朴弼琦, 1677-1757)의 서문이 있고, 이어 5인의 송나라 성리학자들이 그려졌으며, 와 그림의 각 폭에는 그림과 관련된 글이 있는데, 글씨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던 이광사(李匡師,1705-1777)가 썼다고 전해진다. 이광사는..

카테고리 없음 2025.07.05

살아간다는 것은-이외수

저무는 바다를 머리 맡에 걸어두고살아간다는 것은저물어 간다는 것이다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나는 시린 무릎 감싸안으며 나즈막히 그대 이름 부른다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이외수

카테고리 없음 2025.07.05

겸재 문인6-觀瀑圖 宋之問詩意圖 聚星圖

관폭도觀瀑圖한 선비가 기울어진 소나무에 손을 걸치고 시원하게 흐르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표현된 부채 그림이다. 18세기에 간행된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의 인물옥우보(人物屋宇譜)』에는 속 인물의 자세와 동일한 판화가 수록되어 있다. 정선은 이 화보를 참고하여 그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선은 그림의 왼쪽에 짤막한 글을 남겼다. 글의 내용은 "삼용추 목포 아래에서 유유히 남산을 바라본다(三龍湫瀑下悠然見南山)"이다. 삼용추는 내연산에 흐르는 폭포로 정선이 현감으로 부임했던 청하현의 명승지이다. 뒷 구절은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음주(飲酒)」에서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정선은 글에 있는 폭포와 산을 부채 화면에 명확하게 그려 넣었다. 그러나 그림 속의 인물은 원경의 산이 아닌 화면의 오..

카테고리 없음 2025.07.05

歸去來兮辭-陶潛

歸去來兮辭 田園將蕪 好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途基未遠 覺今是而昨非. 舟搖搖而軽颺 風飄飄而吹衣.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자! 벼슬에서 물러나 내 집의 논밭으로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하고 있거늘, 어찌 돌아 가지 않을 것이냐?이미 내가 잘못하여 스스로 벼슬살이를 했고 따라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혼자 한탄하고 슬퍼만 해야 하겠는가?지난 일은 공연히 탓해야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고, 또한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사실 내가 길을 잃고 헤매기는 했으나 아직도 그리 멀리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각성하여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잘못이었음도 깊이 깨달았노라.집으로 돌아가는 배는 출렁출렁 가볍게 바람을..

카테고리 없음 2025.07.05

겸재 문인5-撫松觀山圖 歸去來圖帖

○무송관산도 撫松觀山圖이 그림의 왼쪽 상단에 겸재 정선의 낙관과 함께 "햇살은 어둑어둑 저물어 가는데,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이노라.(景翳翳而將入,撫孤松而盤還.)"는 시구가 정선의 필치로 쓰여 있다. 이 시는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이 작품이 귀거래사」를 그림으로 바꿔놓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선은 귀거래사」를 화제(畵題)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원백(元伯)'이라는 도장 및 글씨, 고사도(故事圖)임에도 불구하고 진경화법의 특징이 무르녹아 있는 것으로 보아 80세 전후한 시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정선의 최만년기 작품답게 강렬한 필묵법이 온화한 운필로 자제되어 외유내강 (外柔內剛)의 묘리(妙理)를 보여 준다. 그림 상단에 "청송(青松)..

카테고리 없음 2025.07.04

겸재 문인4-歸去來圖十幅屏

귀거래도10폭병 歸去來圖十幅屏귀거래도10폭병 歸去來圖十幅屏귀거래도는 중국 동진(東晋)시대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관리 생활에 염증을 느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며, 자신의 심정을 옳은 유명한 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시의도(詩意圖)의 주제로 널리 애호되었으며, 많은 화가들에 의해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귀거래도는 주로 개별 주제를 단독 작품으로 그리거나 중요한 시구만을 발췌하여 8폭의 작품으로 그려지는데, 이처럼 10폭의 작품으로 남겨진 예는 매우 드물다. 작품의 크기로 보아 원래 화첩으로 제작되었으나 후에 병풍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각 폭은 화면 상단에 적힌 화제(畵題)를 토대로 그 내용을 도해하고 있다. 소나무를 어루만지..

카테고리 없음 2025.07.04

겸재 문인3 -雲松停琴圖 高士觀瀑圖 松陰納涼圖 山水人物圖

운송정금도 雲松停琴圖이 작품에 겸재 정선이 쓴 시는 김창흡의 신심의 그림병풍에 제하다(題申翼仲鐔畵屛)이다. 신심(申鐔 1662-1715)은 대사간을 지낸 사대부로 병풍을 꾸밀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던 것 같다. 김창흡은 이 시에 "구름 싸인 두 그루 소나무, 사이에 물 마시는 사슴 있네. 바람은 멀리서 불어오고, 여운(餘韻)은 벼랑 끝에 감돈다. 거문고 내려놓고 머리를 드니, 산마루에 구름만 가득하다.(雲松兩株,間有飲鹿,風來自遠,韻動崖谷、停琴矯首,能雲來矚,)"라고 했으며, 이 시를 화제(畵) 삼아 정선이 이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는 거문고를 잠시 내려놓은 선비가 개울 건너 물 마시는 사슴을 바라보고 있는 마치 동화 속 이야기 같은 모습을 표현했다. 정선은 사대부 화가로서 시문(詩文)을 화제로 그림으로..

카테고리 없음 2025.07.04

겸재 문인2-四季山水圖帖

사계산수도첩 四季山水圖帖 5폭정선 조선, 1719년 비단에 수묵 각 30.0×53.3 cm 호림박물관春.夏.秋.雪.冬景정선은 1719년 10월경에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의 집에 하룻밤을 머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을 표현한 산수화에 설경 산수화를 더하여 총 5점의 산수화를 그에게 그려 주었다. 정선은 중국에서 전해진 다양한 화보(畵)들에 수록된 여러 화가들의 그림들을 참고하여 이 화첩을 완성하였다. 그중에서도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를 대표하는 원말사대가 (元末四大家)의 그림들이 정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속 5점의 산수화에는 원말사대가 중 한 명인 예찬 (倪瓚, 1301-1374)의 영향이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예찬의 대표적인 표현방식은 높이 자란 대여섯 그루의 나무..

카테고리 없음 2025.07.04

겸재 문인1-廬山草堂 廬山瀑 夏景山水圖

여산초당 廬山草堂여산(山)은 중국 장시성(江西省)에 있는 명산으로, 주(周)나라 현자인 광속(俗)이 왕의 부름을 피하여 이곳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다가 신선이 되어 올라가고 빈 집만 남았으므로 광려산(山) 혹은 광산(山)·여산(山) 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은 광속의 고사가 아닌 당(唐)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의 여산초당을 그린 것이다. 여산초당기 (廬山草堂記)에 묘사된 여산초당은 북쪽엔 향로봉(香爐峯), 동쪽엔 폭포가 있으며, 남쪽 네모난 연못(方池)에 백련(白蓮)이 피어 있고, 개울 따라 늙은 소나무와 삼나무가 있어 그 키를 알 수 없다 했다. 겸재 정선은 이 글을 읽고 시정과 화흥이 넘쳐 이 그림을 그린 듯하다. 초당에 앉은 백거이의 모습은 정선이 자주 그리던 전형적..

카테고리 없음 202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