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백련, <頭白農人> 1973,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연진회를 통해 호남 화단을 이끌어 갔던 의재(毅齋) 허백련 (許百鍊, 1891-1977)은 평생 남종화에 천착하였다. 강 너머 메마른 먹으로 쌓아 올린 먼 산은 정통 산수에 기반을 두면서, 푸른 전답이 펼쳐진 전경에는 실재하는 농촌의 모습을 재현하려 했다. 허백련은 <두백농인>을 통해 평범한 농촌 마을을 이상적 정경으로 승화하였는데, 농촌 진흥에 뜻을 두고 농업 학교 설립에 앞장섰던 그의 이상이 녹아 있다. 소를 끄는 농부, 괭이를 멘 노인은 화제를 시각화 한 것으로 화면 가운데 동세를 주며, 마른 먹을 기초로 산뜻하게 베풀어진 담채는 청신한 감각을 더한다.변관식, <금강산 구룡폭> 1960년대,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1899-1976)은 서화미술회에서 수학, 이후 동경으로 유학하여 고무로스이운(小室翠雲 1874~1945)에게 남화풍의 회화를 배웠다. 1937년경부터 8년간 금강산을 비롯한 전국 명승지를 유람하며 현장사생을 한 변관식은 1950년대 후반부터 특히 금강산을 소재로 한 산수화를 그렸다. 그에게 금강산은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등 다사다난한 역사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신과 기상의 상징이기도 했다. 금강산 외금강의 구룡폭포를 묘사한 이 작품은 변관식의 '소정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작 중 하나로 사실적으로 표현된 바위와 폭포의 수직적인 구성은 극적인 인상을 준다.이영찬, <구미정> 1992,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92 <구미정>은 지목(志木) 이영찬(李永燦, 1935-)의 실경산수화로, 강원도 정선군에 실재하는 정자와 주변의 절경을 사생에 기초하여 정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조선 숙종 때 문신 이자(李滋, 1652-1737)가 정선에 내려와 은거하는 가운데 누정을 지었는데, 이곳에서 바라본 아홉 가지 빼어난 점을 현판에 새겨 넣고 구미정 (九美亭)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구미 (九美)는 각각 물가의 고기 잡이, 비옥한 밭두렁, 소반과 같은 아담한 산과 돌층대, 연못, 넓적한 바위, 맑고 잔잔한 물과 푸른 절벽, 펼쳐진 산봉우리를 일컫는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자 마루 끝에 걸터앉아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감상하는 이가 보인다. 장엄한 자연과 대비되는 작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에서 어지러운 세태를 뒤로한 채 자연에 묻혀 남은 세월을 순리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은둔 선비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천경자, <노오란 산책길>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천경자(千鏡子, 1924-2015)를 상징하는 '꽃과 영혼의 화가', '화려한 슬픔'과 같은 수식어는 그의 작품세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도쿄여자미술학교에 유학하던 시기부터 해방 후 채색화의 오랜 침체기 시기에도 천경자는 일관되게 현실적 고뇌를 담은 인물 채색화를 그려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다. 작가는 1970년대에 단색조의 배경에 상반신의 여인상을 그렸던 것과 달리, 1982년 무렵부터는 큰며느리를 모델로 하여 풍부한 배경 속의 전신상에 가까운 여인을 그렸다. 노오란 산책길>은 이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1982(3)년 즈음부터 작가는 우수 어린 깊은 눈을 표현하기 위하여 홍채의 노란 안료 부분에 금분을 섞어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흰 동공의 처연한 눈빛이 한결 두드러져 보인다.김기창, <군마> 1955,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운보 김기창(金基昶, 1914- 2001)은 1950년대에 반추상과 입체파를 절충한 현대적 동양화를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수묵의 농담 변화가 풍부한 대화면의 역작을 발표하였다.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로 선정되어 출품한 <군마>는 생명감이 분출하는 말을 역동적으로 그려 내어 크게 주목받았다. 김기창은 말이 깨끗한 마음과 지혜롭고 용맹스러운 기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여, 이를 인간의 감정으로 상징화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동양화의 현대성을 모색하던 시기의 대표작으로 전통을 벗어나 분방한 필묵의 '동적 생명감'을 보여준다.장운상, <구월> 1956, 종이에 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목불(木佛) 장운상(張雲祥, 1926- 1982)은 1946년 창설된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부 제1기의 첫 졸업생으로 평생 동양화를 그린 작가이다. <구월>(1956)은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무감사 입선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상반신 여성 누드 인물화이다. 그림을 보면 이리저리 얽힌 포도 넝쿨을 배경으로 한 여인이 도발적인 자세로 앉아 있다. 건강미 넘치는 여인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채 한쪽 무릎을 세우고 있다. 과장된 이목구비와 구릿빛 피부, 왜곡된 신체 비례, 청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린 넝쿨 등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허건, <풍속도> 1945, 종이에 먹, 색, 개인 소장 남농 허건(許楗, 1907-1987)은 호남 지역의 대표 화가인 허련의 손자이자 허형의 아들로서, 전통화법에 기반한 남종화 계열의 작품과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광받았던 관전풍 사경산수를 통해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1940년대에 이르면 실재하는 풍경을 차분한 색감으로 묘사하였는데, 특히 자신이 거주하던 목포 근경의 실경을 그려 내었다. <풍속도>에서는 농촌의 소박한 일상을 친근하게 포착했는데, 한복 차림의 인물들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장기를 두거나 팔을 베고 누워 한가로운 쉼을 즐기고 있다. 부드러운 갈필과 맑은 담채는 화면에 생동감을 더하며, 짧고 경쾌한 터치로 화면 가득 찍은 색점에서는 역시 화가였던 동생 허림과 자신이 일시적으로 실험한 점묘법의 잔흔을 찾아볼 수 있다.이당 김은호, <애련미인도> 金殷错《爱美人图》 1921, 비단에 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은호(金殷鎬, 1892- 1979)는 한국 근현대 수묵채색 화단에서 서화협회전과 조선미술전람회를 무대로 활동하였으며, 문하에 많은 제자들을 배출시켰다. 학습기에 이미 어진화가로 발탁되어 혜성처럼 등단한 김은호는 아름다운 여성이 주인공인 미인도로 이름을 날렸다. '애련(愛蓮)'이라는 주제는 중국 북송기 문학가인 주돈이 와 관계가 깊어 시서화로 많이 다루어졌는데, 김은호는 오동나무 아래에서 연못에 핀 연꽃을 감상하고 있는 두 여성을 그렸다. 국화나 모란을 사랑하는 이가 많으나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맑은 꽃을 피우는 연꽃을 사랑했던 고사를 근대적인 미인도로 그려낸 점이 흥미롭다.허건, <목포교외> 1942,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남농 허건楗, 1907-1987)은 소치 허련(許鍊)의 손자이며, 허형의 넷째 아들로, 허백련과 함께 각각 목포와 광주에서 후학을 양성하여 호남화단의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진다. <목포교외>는 제21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으로 목포 유달산 근교의 야산을 그린 것이다. 작품에 쓰인 재료가 지필묵이 아닌 토점화(點)라는 점에서 주목되며, 하늘을 제외한 산자락에 펼쳐진 밭과 초가집, 나무들과 밭은 황토를 얇게 바른 뒤 채색하였다. 일본에 유학한 동생 허림이 토점화로 제작한 <과수원 풍경>(1940)과 <맥구(麥丘)>(1941)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들은 1940년대 전반부터 동양화에서 매체적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다.이상범, <초동> 1926,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청전(靑)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은 근대적 산수화를 모색하는 연구 단체인 동연사(同社)의 주요 멤버로서, 보다 확장된 화면을 채택하여 한문의 제발을 최소화하였으며, 서양화의 공간감과 원근감을 적극 반영하였다.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초동>은 동연사의 실험 성과를 보여주는 초기작 가운데 드물게 현전하는 작품이며, 전통 산수에서 근대적 산수로의 변모를 보여주며 관전 산수화의 전형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초동>은 선을 위주로 삼았던 전통에서 벗어나 마른 붓으로 찍은 점들로 윤곽을 그려, 뼈대가 앙상한 나무, 추수가 끝난 논밭의 이미지로 이제 막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감을 드러낸다.이용우, <점우청소> 1935, 비단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점우청소(淸疎)>는 묵로(墨 이용우(李用雨, 1904-1952)가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사경산수화로서 본래 두 폭의 가리개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비가 내린 뒤 물기를 머금은 대지, 멀리 운무가 걷혀 가는 경이로운 순간을 화면에 담았으며, 전경을 크게 부각하여 전통 산수화와 구도적 차이를 두었다. 옅은 먹과 갈필의 짧은 선을 중첩하여 땅과 산의 윤곽을 드러내고 먼 산의 공간감을 강조하였는데, 좌우로 짧게 그은 가로선이 강조되는 점은 이용우만의 특색이다.노수현, <망금강산> 1940, 종이에 먹, 색,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심산() 노수현(盧壽鉉, 1899-1978) 은 1940년대에 금강산의 명소들을 그린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금강산은 문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유람처로서 많은 문인과 묵객이 시와 그림으로 금강산을 노닐던 소회를 남겼다. 본래 '망금강'의 화제는 금강산으로 진입하기 전 단발령에서 금강산의 전경을 조망하며 비롯되었기에, 각 폭으로 구성된 금강산도 병풍의 가장 첫 폭에 '단발령망금강' 장면이 등장한다. 암산과 토산이 조화를 이룬 금강산은 운무 속에서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며, 망금강의 소재와 금강산을 조망하는 한복 차림의 유람객은 금강산도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한편 화폭 가득 넓게 펼쳐진 금강산의 산형이나 노수현 특유의 바위 표현은 새로운 전형의 탄생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