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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王十二 寒夜獨酌有懷-李白

白雲 2024. 12. 6. 00:07

答王十二 寒夜獨酌有懷(답왕십이 한야독작유회) - 李白(이백)
<왕십이의 한야독작유회의 시에 답하다>

昨夜吳中雪(작야오중설),
子猷佳興發(자유가흥발)。
萬里浮雲卷碧山(만리부운권벽산),
青天中道流孤月(청천중도류고월)。
孤月滄浪河漢清(고월창랑하한청),
北斗錯落長庚明(북두착락장경명)。
懷余對酒夜霜白(회여대주야상백),
玉牀金井冰崢嶸(옥상금정빙쟁영)。
人生飄忽百年內(인생표홀백년내),
且須酣暢萬古情(차수감창만고정)。
君不能狸膏金距學鬬雞(군불능리고금거학투계),
坐令鼻息吹虹霓(좌령비식취홍예)。
君不能學哥舒(군불능학가서),
橫行青海夜帶刀(횡행청해야대도),
西屠石堡取紫袍(서도석보취자포)。
吟詩作賦北牕裏(음시작부북창리),
萬言不直一杯水(만언부직일배수)。
世人聞此皆掉頭(세인문차개도두),
有如東風射馬耳(유여동풍사마이)。

<원문출처> 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作者:李白 唐 / 全唐詩·卷178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마이동풍(馬耳東風)>

어제 밤 오나라 땅에 눈이 와
왕자유(王子猷)가 좋아하여 흥을 돋궜네.
하염없는 뜬구름 푸른 산을 둘러싸고
푸른 하늘 가운데 외로운 달이 흐르고 있네.
외로운 달은 푸른 물결의 은하수에 푸르고
북두칠성은 흩어져 깔려 밝게 빛난다.
그대와 대작하면서 하얀 밤 서리를 생각하니
우물의 옥난간에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었지.
인생은 아차 하는 사이에 백년도 채우지 못한다.
또 술이나 마셔 한없는 옛 생각을 떨쳐 버리세.
그대는 닭 머리에 승냥이 기름을 바르고 금발톱 끼워
우두머리를 코로 무지개를 뿜어내며 앉아있게 할 수 있는가.
그대는 가서한(哥舒翰)처럼 칼을 차고 청해의 밤바다를 건너
석보성(石堡城)의 적들을 무찔러 삼품 벼슬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겠나.
햇볕이 쪼이지 않는 북쪽 창문 아래에서,
일 만 마디를 지어도 고작 술 한 잔의 가치도 없다네
세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네
마치 봄바람이 말의 귀에 스치는 것처럼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왕십이(王十二)가 이백에게 보낸 《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추운 밤에 홀로 술잔을 들며 수심에 잠긴다'고한 시에 이백이 답하여 쓴 시의 일부분이며 전문은 아래에 기록해 놓았다. 왕십이는 십이품의 벼슬을 하고 있는 이백의 친구이며 이름 및 생년은 미상이다. 이백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이 고심하여 쓴 시를 제대로 이해할 줄 모르니 말의 귀에 봄바람이 부는 것과 같다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 중에 <有如東風射馬耳(유여동풍사마이) ‘동풍이 말의 귀에 스치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사자성어 마이동풍의 유래가 되었다.

○ 子猷佳興發(자유가흥발) : 왕희지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가 산에 있다가 큰 눈이 와 자다 일어나 술을 가져오라 하고 <초은시>를 지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세설신어>
○ 子猷(자유) : 王徽之(왕휘지). 중국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의 다섯째 아들. 자는 자유(子猷). 관직은 황문시랑(黃門侍郞)에 이르렀다. 풍류인으로 일화가 많다. 기병참군이 되었으나 관리하는 병마의 수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대나무(竹)를 사랑하여 “하루도 대(竹)가 없으면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며 또한 눈 오는 밤에 연계에 거주하는 친구 대규를 찾아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는 일화는 고사인물화의 화제, 『연계방대』가 되었다. 서예는 아버지에게 배워서 초서와 행서를 잘했다. 그의 아우 왕헌지가 죽은 후 곧 사망했다. 『순화각첩』에 『득신첩』, 『만세통천진첩』에 「신월첩」등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왕휘지 [王徽之, Huizhi Wang]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 滄浪河漢(창랑하한) : 푸른 파도와 같은 은하수
○ 飄忽(표홀) :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양이 빠름
○ 狸膏金距(이고금거) : 중국에서는 닭싸움을 전국시대(서기전 403~221) 전부터 벌였다. 『춘추좌전』에 “노(魯)의 세 호족 가운데, 사이가 가장 나쁜 계평자(季平子)와 우소백(郈昭伯)이 닭싸움으로 승부를 지었다.”는 내용이 있다(「소공(昭公)」 25년). 우소백(郈昭伯)은 며느리발톱에 날카로운 칼[금거(金距)]을 채웠고, 계평자(季平子)는 볏에 개계(介鷄)라는 쇠투구를 씌웠다. (개계가 겨잣 가루라는 설, 아교에 모래를 섞어 가슴에 칠하는 물질이라는 설, 개를 갑(甲)으로 보고 가슴에 갑주처럼 가죽을 씌운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이밖에 벼슬에 삵쾡이 기름(狸膏:이고)도 발라서, 살쾡이를 무서워하는 닭의 기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후대에는 두 가지를 모두 마련하였으며 이 무장(武裝)은 명 · 청대까지 이어 내려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닭싸움 (동아시아의 놀이, 민속원)
○ 君不能學哥舒(군불능학가서) : 가서한과 같은 용맹을 배울 수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가서한(哥舒翰)은 당나라 때 투르크족 가서(哥舒) 부족 사람이며 안서(安西)에 세거(世居)했다. 안서부도호(安西副都護)의 아들이다. 나이 마흔 살쯤에 하서(河西) 절도사 왕충사(王忠嗣)의 막하 무장으로 들어가 아장(衙將)이 되어 토번의 침입을 격파했다. 좌위낭장(左衛郎將)으로 옮겼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6년(747) 농우절도부사(隴右節度副使)가 되고, 나중에 군공으로 특진(特進)에 올랐다. 12년(753) 양국공(凉國公)에 봉해지고, 하서절도사가 더해졌으며, 얼마 뒤 서평군왕(西平郡王)에 봉해졌다.[네이버 지식백과] 가서한 [哥舒翰]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 紫袍(자포) : 자줏빛 도포(道袍). 당나라 시절 삼품이상의 관원의 옷이 자주빛 도포이었다.
○ 有如東風射馬耳(유여동풍사마이) : 동풍은 봄바람의 뜻. 그 동풍이 말의 귀를 스쳐 봤자 가렵지도 않을 것과 마찬가지로 세인들이 시인의 말이나 걸작에 기울이는 관심도가 그 정도로 낮다는 것에 이백이 비분(悲憤)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