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陵敍別(남릉서별)-李白>
白酒新熟山中歸(백주신숙산중귀),
黃雞啄黍秋正肥(황계탁서추정비)。
呼童烹雞酌白酒(호동팽계작백주),
兒女嬉笑牽人衣(아녀희소견인의)。
高歌取醉欲自慰(고가취취욕자위),
起舞落日爭光輝(기무락일쟁광휘)。
游說萬乘苦不早(유세만승고불조),
著鞭跨馬涉遠道(저편과마섭원도)。
會稽愚婦輕買臣(회계우부경매신),
余亦辭家西入秦(여역사가서입진)。
仰天大笑出門去(앙천대소출문거),
我輩豈是蓬蒿人(아배기시봉호인)。
백주(白酒)가 처음 익자 산중으로 돌아오니
누런 닭 기장 쪼아 먹어 가을에 마침 살쪘네.
아이 불러 닭 잡게 하고 백주 마시니
아이들 재롱부려 웃으며 내 옷을 잡아끄네.
소리 높여 노래하며 술 취해 스스로 위로하고자 일어나 춤추며 지는 해와 붉은 얼굴빛을 다투네.
만승천자(萬乘天子)에게 일찍 유세하지 못함 괴로우니 채찍 잡고 말에 올라 먼 길 떠나가네.
회계(會稽)의 어리석은 지어미 주매신(朱買臣)을 경시하였으니 나 또한 집 하직하고 서쪽 장안으로 들어간다오.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며 문을 나서 떠나가니 우리들이 어찌 초야에 묻혀 있을 사람인가
-全唐詩·卷174, 30.南陵別兒童入京, 作者:李白 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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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문진보]南陵敍別(남릉서별)/南陵別兒童入京(남릉별아동입경) - 李白(이백)
본래 소북성 安陸에 살던 李白이 부인 許씨 가 세상을 떠나자 자식 둘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와 먼친척 현령의 도움으로 집과 전답도 마련하고 과수에게 새로 장가도 갔으나 벼슬길이 열리지 않아 매일 울분을 시와 검무.술로 세윌을 보내다 드디어 벼슬로 가는여행길에 나선지 17년 만인 42세 가 되어서야 황제의 부름을 받아 장안 으로 길을 떠나며 자식들과 기쁨의 춤을 추며 남긴 詩 이다
*주매신[朱買臣] 출생 - 사망 미상 ~ BC 115년
전한 회계(會稽) 오현(吳縣, 강소성 蘇州) 사람. 자는 옹자(翁子)다. 학문을 좋아하면서도 집안이 가난하여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아내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헤어졌다. 나중에 장안(長安)에 와서 상서(上書)했다. 상계리(上計吏)에 속해 지내던 중 엄조(嚴助)의 추천으로 무제(武帝)에게 『춘추』를 강설하게 되어 중대부(中大夫)에 오르게 되었다. 그 뒤 회계태수(會稽太守)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 헤어진 아내와 그의 남편을 불러 도와주었는데, 그 아내는 부끄러워 자살했다고 한다.
황명으로 병사를 이끌고 횡해장군(橫海將軍) 한설(韓說) 등과 함께 동월(東越)을 공격해 공을 세웠고, 입조하여 주작도위(主爵都尉)에 올랐다. 구경(九卿)의 반열에 올랐고, 승상장사(丞相長史)가 되었다. 어사대부 장탕(張湯)과 평소 원한이 있었는데, 장탕이 승상의 일을 맡으면서 그를 능멸하자 비리를 파헤쳐 자살하게 했다. 이 일로 무제의 분노를 사 그 역시 죽임을 당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매신 [朱買臣]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