桂枝香·金陵懷古(계지향·금릉회고)
-王安石(왕안석)
登臨送目(등림송목),
正故國晚秋(정고국만추),
天氣初肅(천기초숙)。
千里澄江似練(천리징강사련),
翠峰如簇(취봉여착)。
歸帆去棹殘陽裏(귀범거도잔양리),
背西風(배서풍),
酒旗斜矗(주기사촉)。
彩舟雲淡(채주운담),
星河鷺起(성하로기),
畫圖難足(화도난족)。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옛 도읍 금릉은 지금 늦가을, 날씨가 소슬해지기 시작하네.
천 리 맑은 장강은 흰 비단 같고 푸른 산봉우리들은 화살촉 같구나.
오가는 돛단배는 석양 속에 있고 서풍을 등지고 술집 깃발은 비스듬히 높이 걸려있네.
그림배는 아름답고 구름은 엷은데 장강엔 백로 날아오르니 그림으로도 그려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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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桂枝香(계지향) : 사패명(詞牌名). ‘소렴담월(疏帘淡月)’, ‘계지향만(桂枝香慢)’이라고도 하며 왕안석(王安石)의 《桂枝香·金陵懷古》가 정체(正體)로 쌍조(雙調) 101자이다.
○ 金陵(금릉) : 지금의 남경(南京). 장강(長江)의 절풍을 끼고 있는 데다 강산이 수려하여, 삼국시대의 오(吳),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진(晉)·송(宋)·제(齊)·양(梁)·진(陳)나라 모두가 이곳에 도읍을 두고 '건업(建業)'이라 칭하였다.
○ 送目(송목) : 멀리 바라보다.
○ 故國(고국) : 고도(故都). 금릉(金陵)은 육조 때 고도(故都)인 까닭에 고국이라고 칭하였다.
○ 千里澄江似練(천리징강사련) : 장강(長江)이 한 폭의 긴 흰 비단과 같다. 련(練)은 흰 비단.
○ 如簇(여착) : 산봉우리들이 밀집해 있는 모양. 簇(착)은 화살촉.
○ 歸帆去棹(귀범거도) : 왕래하는 배. 돌아오는 배와 가는 배. 棹(도)는 노. 배.
○ 斜矗(사촉) : 비스듬히 서 있다. 촉(矗)은 우뚝 서다.
○ 彩舟(채주) : 채색한 그림 배
○ 星河(성하) : 은하수. 여기서는 장강의 지류인 진회강(秦淮河)을 말한다.
○ 畫圖難足(화도난족) : 아름다움을 그림으로도 그려내기 어렵다.
○ 繁華競逐(번화경축) : 육조의 귀족들이 번화한 생활을 하려고 서로 경쟁하다. 競逐은 다투어 쫓다.
○ 門外樓頭(문외루두) : 남문 밖 누대. 남조 진(陳)나라의 멸망을 말한다. 수나라 장수 한금호(韓擒虎)가 수 문제(隨 文帝) 때 군사 5백을 거느리고 진(陳)나라를 공격하여 금릉 주작문(朱雀門:南門)밖에 진을 치고, 결기각(結綺閣)에서 놀고 있는 진 후주(陳後主)와 비(妃) 장여화(張麗華)를 붙잡아 죽인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 憑高(빙고) :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다..
○ 漫嗟(만차) : 헛되이 탄식하다.
○ 六朝(육조) : 중국에서 후한이 멸망한 뒤 수나라가 통일할 때까지 양자강 남쪽에 있었던 여섯 왕조<오(吳)·동진(東晋)·송(宋)·제(齊)·양(梁)·진(陳)>.
○ 商女(상녀) : 가녀(歌女).
○ 《後庭》遺曲(<후정>유곡) : 玉樹後庭花(옥수후정화). <후정화>는 궁중 무곡(舞曲)의 명칭이며, 남조악부의 편명으로 <청상곡사 오성가곡>에 속한다. 진숙보(진후주)가 지은 것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그의 총비(寵妃)였던 장려화(張麗華)가 항상 이 곡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고 한다. 남조(南朝) 진(陳)나라 마지막 군주인 진숙보(陳叔寶)는 수(隋)나라 군대가 왕궁을 공격하는데도 평소처럼 성 안에서 술을 마시고 시 읊기에 여념이 없다가 결국 포로가 되었다. 그는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라는 노래를 짓고 후궁의 미녀들에게 이를 익혀 노래하게 했다고 하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亡國之音(망국지음)’이라 칭한다.
[陳後主集(진후주집)] 玉樹後庭花(옥수후정화) - 陳叔寶(진숙보)
<아름다운 나무 뒤뜰의 꽃>
이 사는 <송사삼백수> 및 <전송사(全宋詞)>에 실려 있으며 <송사삼백수>에는 ‘계지향(桂枝香)’, <전송사>에는 ‘桂枝香·金陵懷古’로 기록하고 있다.
이 사는 송나라의 정치가이며 문학가인 왕안석이 지은 사이다. 왕안석은 송 신종 때(1067년) 강녕부(江寧府) 지사(知事)로 부임하였다. 또한 송 신종 희녕 9년(1076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강녕부(江寧府)로 갈 때 금릉을 지났는데 이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금릉의 가을 경치를 바라보고 남조의 진(陳)나라가 멸망한 것에 기탁하여 암담한 현실의 정치를 비유하였다.
※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송나라의 개혁 정치가이다. 중국 강서성(江西省) 출신이며 북송 시기에의 시인·문필가로 활약하였다. 자는 개보(介甫), 호는 반산(半山)이다. 신법(新法)이라는 개혁책을 통해 균수법(均輸法), 청묘법(靑苗法), 시역법(市易法), 모역법(募役法), 보갑법(保甲法), 보마법(保馬法) 등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개혁하려고 노력했는데도 당쟁이 격화하고 정치가 혼란에 빠지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의 개혁 정치는 보수파에 매도되었지만 문장력은 동료와 정적뿐이 모두 인정했을 만큼 뛰어났다. 그는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