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韋左丞(증위좌승)
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봉증위좌승장이십이운)-杜甫(두보)
<위좌승에게 올리다>
이 시는 상서좌승(尙書左丞) 위제(韋濟)에게 올린 시로 《杜少陵集(두소릉집)》1권에는 제목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봉증위좌승장이십이운)〉으로 되어 있는데, 장(丈)은 장인(丈人:어르신)의 약칭(略稱)이다. 이 시는 천보(天寶) 7년(748) 겨울 장안에서 지은 것으로 위좌승에게 자신을 등용해 주기를 청하고, 만약 여의치 않을 때에는 장차 장안을 떠나 동해(東海)로 가려 한다는 내용이다. 두보의 장편(長篇)은 대구(對句)에 약한 단점이 있으나 오직 이 시만은 전형적으로 배치하여 장편의 정체를 가장 잘 보여주므로 선유(先儒)들이 압권(壓卷)으로 여겼다고 한다.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밝히며 알아주기를 바라는 시성(詩聖)의 고달픈 처지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紈袴不餓死(환고불아사),
儒冠多誤身(유관다오신)。
丈人試靜聽(장인시정청),
賤子請具陳(천자청구진)。
甫昔少年日(보석소년일),
早充觀國賓(조충관국빈)。
讀書破萬卷(독서파만권),
下筆如有神(하필여유신)。
賦料揚雄敵(부료양웅적),
詩看子建親(시간자건친)。
李邕求識面(이옹구식면),
王翰願卜鄰(왕한원복린)。
自謂頗挺出(자위파정출),
立登要路津(입등요로진)。
致君堯舜上(치군요순상),
再使風俗淳(재사풍속순)。
此意竟蕭條(차의경소조),
行歌非隱淪(행가비은륜)。
騎驢三十載(기려삼십재),
旅食京華春(여식경화춘)。
朝扣富兒門(조구부아문),
暮隨肥馬塵(모수비마진)。
殘杯與冷炙(잔배여랭자),
到處潛悲辛(도처잠비신)。
비단 바지 입은 귀족들 굶어죽지 않으나
선비들은 자기 몸을 그르치는 이 많다오.
좌승 어른께서는 한번 고요히 들어보시오
천한 이 몸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옛날 소년시절에
일찍이 도성(都城)의 문물(文物) 구경하는 손님에 충원되었습니다.
책은 만 권을 독파하였고
붓을 들어 글씨 쓰면 신명(神明)이 돕는 듯하였습니다.
부(賦)는 양웅(揚雄)에게 필적할 만하고
시(詩)는 자건(子建)에 견주어 가까웠습니다.
이옹(李邕)은 얼굴을 알기 바라고
왕한(王翰)은 이웃에 함께 살기 원하였지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못 빼어나니
당장 중요한 벼슬길에 오르리라 여겼습니다.
군주를 요순(堯舜)보다 훌륭한 군주로 만들어
다시 풍속을 순박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이러한 뜻 끝내 쓸쓸하게 되었으나
다니며 노래함 은둔하려는 것 아닙니다.
나귀 타고 다닌 지 삼십 년에
서울의 봄에 나그네로 밥 얻어먹었습니다.
아침에는 부잣집 문 두드리고
저녁이면 살찐 말 뒤 따라다녔는데
남은 술잔과 식은 불고기에
이르는 곳마다 남몰래 슬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 韋左丞(위좌승) : 좌승(左丞)의 성은 위(韋)요 이름은 제(濟)이다.
○ 紈袴(환고) : 곱고 흰 비단(緋緞) 바지
○ 丈人(장인) : 어르신이란 뜻으로 저자가 좌승(左丞)인 위제(韋濟)를 가리킨 것이다.
○ 觀國賓(관국빈) : 《周易(주역)》 〈觀卦(관괘)〉 六四爻(육십사효)의 “觀國之光(관국지광) 利用賓于王(이용빈우왕)”을 인용한 것으로 벼슬길에 올라 국사(國士)로 충원됨을 이르는데, 후대에는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감을 말하기도 한다.
○ 賦料揚雄敵(부료양웅적) : 양웅(揚雄)은 자가 자운(子雲)이니, 일찍이 사부(詞賦)를 좋아하여 언제나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비기곤 하였다.
○ 詩看子建親(시간자건친) : 조식(曹植)은 자가 자건(子建)이니, 글짓기를 잘하여 시(詩)가 국풍(國風)에서 나와 우뚝하여 범상치 않았다.
○ 李邕求識面(이옹구식면) 王翰願卜隣(왕한원복린) : “이옹(李邕)이 문재(文才)가 있으므로 후진(後進)들이 그를 사모하여 그의 얼굴을 알려고 하였다.” 하였으나 이는 이옹(李邕)과 왕한(王翰)은 모두 당시의 인물로 이들이 두보(杜甫)와 사귀기를 원하고, 또 한 마을에서 함께 살기를 원한 것으로 봄이 옳을 듯하다.
○ 要路津(요로진) : 누구라도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요긴한 나루터 또는 장소. 정치의 중요한 지위 또는 정승이 되는 일. 요진(要津).

主上頃見徵(주상경견징),
欻然欲求伸(훌연욕구신)。
青冥卻垂翅(청명각수시),
蹭蹬無縱鱗(층등무종린)。
甚媿丈人厚(심괴장인후),
甚知丈人真(심괴장인진)。
每於百僚上(매어백료상),
猥誦佳句新(외송가구신)。
竊效貢公喜(절효공공희),
難甘原憲貧(난감원헌빈)。
焉能心怏怏(언능심앙앙),
只是走踆踆(지시주준준).
今欲東入海(금욕동입해),
即將西去秦(즉장서거진)。
尚憐終南山(상련종남산),
回首清渭濱(회수청위빈)。
常擬報一飯(상의보일반),
況懷辭大臣(황회사대신)。
白鷗沒浩蕩(백구몰호탕),
萬里誰能馴(만리수능치)。
주상(主上)께서 지난번 불러주시니
문득 뜻을 펴고자 하였습니다.
푸른 하늘로 날려 하였으나 다시 날개 접고
세력 잃어 갈 곳 없는 물고기처럼 되었습니다.
어르신의 후의에 매우 부끄럽고
어르신의 진실한 사랑 참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여러 관료들 위에서
제가 새로 지은 시 외람되이 외시곤 하였습니다.
적이 공공(貢公)의 기쁨 본받으려 하고
원헌(原憲)의 가난 달게 여기기 어렵습니다.
어찌 마음속에 불평하겠습니까
다만 달리기를 분주히 할 뿐입니다.
이제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가고자 하여
곧 장차 서쪽 장안(長安)을 떠나려 하옵니다.
그러나 아직도 종남산(終南山) 사랑하여
머리 돌려 맑은 위수(渭水)가 바라봅니다.
항상 한 끼 밥의 은혜도 갚으려 하였는데
하물며 대신을 하직하려 생각함이겠습니까.
갈매기가 너른 물결에 출몰한다면
만 리 멀리 있는 자 누가 길들이겠습니까.
○ 蹭蹬無縱鱗(층등무종린) : 이덕홍(李德弘)의 《艮齋集(간재집)》 속집 4권에 “왕포(王褒)가 이르기를 ‘큰 물고기를 큰 강골짜기에 풀어놓는다.’라고 하였으니, 군신(君臣)이 도(道)를 크게 행하는 것은 물고기가 큰 물을 만난 것과 같다. 그런데 지금 두보(杜甫)는 때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蹭蹬無縱鱗(층등무종린)’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다. 蹭蹬(층등)은 잘못 디뎌 길을 잃는다는 뜻이다.
○ 竊效貢公喜(절효공공희) : 공공(貢公)은 전한(前漢) 원제(元帝) 때의 공우(貢禹)를 가리킨다. 자(字)가 소옹(少翁)인데 왕길(王吉)과 매우 친하여 왕길이 등용되면 갓을 털어 쓰고 밖에 나가 기뻐하였다. 왕길은 자(字)가 자양(子陽)이므로 왕양(王陽)이라고도 쓴다.
○ 原憲貧(원헌빈) : 원헌(原憲)은 공자(孔子)의 제자로 자(字)는 자사(子思)인데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지조를 지키며 태연히 살아갔다.
○ 白鷗沒浩蕩(백구몰호탕) 萬里誰能馴(만리수능치) : 자신이 한번 세상에 은둔하여 멀리 강호(江湖)에서 백구(白鷗)들과 함께 노닐게 된다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아 비록 위제(韋濟)라도 만나볼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浩蕩(호탕) : 아주 넓어서 끝이 없음
<원문출처>
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作者:杜甫 唐 /
全唐詩·卷216 /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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