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원전거(歸園田居)其一
(전원으로 돌아와 살면서)
少無適俗韻(소무적속운)
젊어서부터 세속과 어울리지 못하고
性本愛丘山(성본애구산)
성품은 본래 산과 언덕을 사랑하였는데
誤落塵網中(오락진망중)
잘못하여 세속의 그물 속에 떨어진 채로
一去三十年(일거삼십년)
한번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네.
羈鳥戀舊林(기조연구림)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池魚思故淵(지어사고연)
못 속 물고기 옛 연못을 생각하는 법.
開荒南野際(개황남야제)
남쪽 들 언저리에 황무지를 개간하며,
守拙歸園田(수졸귀원전)
졸박함을 지키려 전원으로 돌아왔네.
方宅十餘畝(방택십여무)
네모난 택지에 텃밭이 십여 이랑에
草屋八九間(초옥팔구간)
초가집 여덟 아홉 간이나 된다네.
楡柳蔭後詹(유류음후첨)
뒤 처마에 느릅나무 버드나무 그늘 지고
桃李羅堂前(도리나당전)
복숭아, 자두나무 집 앞에 늘어서 있네.
曖曖遠人村(애애원인촌)
희미하게 저 멀리 인가가 보이고
依依墟里煙(의의허리연)
마을에선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오른다.
狗吠深巷中(구폐심항중)
골목길 안에는 개가 짖어대고
鷄鳴桑樹顚(계명상수전)
집 닭은 뽕나무 꼭대기에서는 우는구나
戶庭無塵雜(호정무진잡)
뜰에는 더럽거나 잡스런 것이 없고,
虛室有餘閒(허실무여한)
빈방에는 한가로움이 남아 있다오
久在樊籠裏(구재번농리)
오랫동안 새장 속에 있다가
復得返自然(복득반자연)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노라.

❍ 도연명[陶淵明] 도잠(陶潛).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 송(宋:유송劉宋) 초기 사람이다. 시인이자 문학가로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시문으로 시명을 얻었다. 강주(江州) 심양(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량(元亮)이다. 송(宋)나라에 와서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연명(淵明)이 그의 자(字)라고도 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東晉)의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에 이르렀으며, 조부 도무(陶茂)와 부친 도일(陶逸)도 태수를 지냈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생활을 위하여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항상 전원생활을 동경한 그는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고향에 은거한 뒤에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에게 정절선생(靖節先生}이란 시호를 주어 불렀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고금의 은일시인 가운데 첫머리[古今隱逸詩人之宗]”라 평가했을 만큼 그의 시풍이 중국문학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주요 작품으로 음주(飮酒)·귀원전거(歸園田居)·도화원기(桃花源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도연명이 직접 지은 만사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