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半靑紅-懶翁惠勤

白雲 2024. 9. 9. 05:58


半靑紅(반청홍)-懶翁惠勤(나옹혜근)
<반은 붉고 반은 푸르네>

金風一陣掃庭中  (김풍일진소정중)
萬里無雲露碧空  (만리무운노벽공)
爽氣微濃人自快  (상기미농인자쾌)
眸光漸淡上連通  (모광점담상연통)
明明寶月分雜盡  (명명보월분잡진)
歷歷珍山數莫窮  (력력진산수막궁)
法法本來安本位  (법법본래안본위)
滿軒秋色半靑紅  (만헌추색반청홍)

가을 바람 한 떼가 뜰 안을 쓸어가고
만리에 구름 없이 푸른 하늘 드러났네
상쾌한 기운 무르녹아 사람들 기뻐하고
눈빛은 맑아져 기러기 연달아 지나가네
밝은 저 보배의 달 가늠하기 어렵고
굽이치는 산맥은 끝없이 뻗어갔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제자리에 있는데
처마 가득 가을빛, 반은 붉고 반 푸르네.

*나옹 혜근(懶翁 惠勤1320∼1376)선사
고려말의 고승. 성은 아(牙)씨. 속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懶翁) 또는 강월헌(江月軒).
선관서영(善官署令) 서구(瑞具)의 아들이다.
21세 때 친구의 죽음으로 인하여 무상을 느끼고,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에 있는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그 뒤 전국의 이름있는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1344년(충혜왕 5) 양주 천보산 회암사(檜巖寺)에서 대오(大悟)하였다.
그때 이 절에 우거하고 있던 일본 승 석옹(石翁)에게 깨달음을 인가 받았다.
1347년(충목왕 3) 원나라로 건너가서 연경(燕京) 법원사(法源寺)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인도승 지공(指空)의 지도를 받으며 4년 동안 지내다가 1358년(공민왕 7)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오대산 상두암(象頭庵)에 은신하였으나 공민왕과 태후의 간곡한 청에 의하여 잠시 신광사(神光寺)에 머무르면서 설법과 참선으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 뒤 공부선(功夫選)의 시관(試官)이 되었고, 1361년부터 용문산· 원적산· 금강산 등지를 순력한 뒤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다.
그는 고려말 보우(普愚)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운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 받고 있다.
왕명으로 밀성(密城, 密陽) 영원사(瑩源寺)로 옮기던 중 5월 15일 나이 56세, 법랍 37세로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시호는 선각(禪覺)이다
저서로는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1권과 <가송(歌頌)>1권이 전한다.


**秋山景色
자연의 채색 靑紅의 대비 그 조화가 황홀하다
(사진들은 인터넷 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