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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妃曲-王安石

白雲 2024. 6. 18. 18:41

明妃曲-王安石
其一
明妃初出漢時(명비초출한궁시),
淚濕春風鬢腳垂(누습춘풍빈각수)。
低徊顧影無顏色(저회고영무안색),
尚得君王不自持(상득군왕부자지)。
歸來卻怪丹青手(귀래각괴단청수),
入眼平生幾曾有(입안평생기증유);
意態由來畫不成(의태유래화불성),
當時枉殺毛延壽(당시왕살모연수)。
一去心知更不歸(일거심지경불귀),
可憐著盡漢宮衣(가련저진한궁의);
寄聲欲問塞南事(기성욕문새남사),
只有年年鴻雁飛(지유년년홍안비)。
家人萬里傳消息(가인만리전소식),
好在氈城莫相憶(호재전성막상억);
君不見咫尺長門閉阿嬌(군불견지척장문폐아교),
人生失意無南北(인생실의무남북)。

명비(明妃)가 처음 한(漢)나라 궁궐 나갈 때에
봄바람에 눈물 젖은 귀밑머리 늘어져 있었네.
배회하며 그림자 돌아보아 안색이 없었으나
오히려 군왕(君王)은 스스로 심신 유지할 수 없었다오.
돌아와서는 단청(丹靑)의 솜씨 괴이하게 여겼으니
눈에 들어온 것 평소 일찍이 없던 미인이었다오.
뜻과 태도는 예로부터 그릴 수 없으니
당년에 헛되이 모연수(毛延壽) 죽였네.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으니
가련하게도 한(漢)나라 궁중의 옷 모두 입고 갔다네.
소식 전하여 변방 남쪽의 일 묻고자 하나
다만 해마다 기러기만 날 뿐이었다오.
가인(佳人)이 만 리에서 소식 전해오니
전성(氈城)에서 잘 지내니 서로 생각하지 말라 하였네.
그대는 보지 못했나 지척의 장문궁(長門宮)에 아교(阿嬌) 유폐한 것
인생에 뜻을 잃음에는 남북의 구별 없다오.

其二
明妃初嫁與胡兒(명비초가여호아),
氈車百輛皆胡姬(전차백량개호희)。
含情欲語獨無處(함정욕어독무처),
傳與琵琶心自知(전여비파심자지)。
黃金桿撥春風手(황금간발춘풍수),
彈看飛鴻勸胡酒(탄간비홍권호주)。
漢宮侍女暗垂淚(한궁시녀암수루),
沙上行人卻回首(사상행인각회수)。
漢恩自淺胡恩深(한은자천호은심),
人生樂在相知心(인생락재상지심)。
可憐青冢已蕪沒(가련청총이무몰),
尚有哀弦留至今(상유애현류지금)。

명비(明妃)가 호아(胡兒)에게 출가하니
털방석 수레 백량에는 모두 오랑캐 여인들 뿐이었네.
정 머금고 말하려 하나 말할 곳 없어
비파에 전하여 마음속으로 혼자만 알고 있었네.
황금 채 잡고 봄바람처럼 온화한 손으로
비파타면서 나는 기러기 보며 오랑캐에게 술 권하니
한(漢)나라 궁전의 시녀들 속으로 눈물 떨구고
사막의 길 가는 사람들도 고개 돌렸다오.
한(漢)나라 은혜 얕고 오랑캐 은혜 깊으니
인생의 즐거움 서로 마음을 알아줌에 있다오.
가련하게도 청총(靑冢) 이미 황폐하였으나
아직도 애처로운 거문고가락 지금까지 남아 있네.

<원문출처> 明妃曲 (王安石)/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明妃(명비)는 王昭君(왕소군)이라 칭해진 한(漢)나라 궁녀로서, 이름은 장(嬙)이며 소군(昭君)은 자(字)이다. 진(晉)나라 문제(文帝) 사마소(司馬昭)의 이름을 휘(諱)하여 명군(明君)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나라 원제(元帝) 경녕(竟寧) 元年(B.C. 33), 흉노왕(匈奴王) 호한사(呼韓邪)에게 시집보낼 궁녀를 뽑을 때, 화사(畵師) 모연수(毛延壽)가 뇌물을 주지 않은 왕소군을 추하게 그려 그녀가 뽑혔는데, 뒤에 원제(元帝)가 미인임을 알고 모연수를 참수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