虞美人(우미인) 詞 - 李煜(이욱)
春花秋月何時了(춘화추월하시료) :
봄꽃 가을 달은 어느 때나 그치려나.
往事知多少(왕사지다소) :
지나간 옛 일 얼마나 알까..
小樓昨夜又東風(소루작야우동풍) :
작은 다락엔 어젯밤 또 동풍이 불어와
故國不堪回首月明中(고국불감회수월명중)
고국엔 차마 달이 밝아도 고개를 돌리지 못하였네.
雕欄玉砌應猶在(조난옥체응유재) :
무늬 새긴 난간 옥 섬돌 그대로 있으련만
只是朱顔改(지시주안개) :
그저 홍안만이 달라졌다네.
問君能有幾多愁(문군능유기다수) :
그대에게 묻노니 시름이 얼마나 많은가
恰似一江春水向東流(흡사일강춘수향동류)
마치 봄 강물이 동으로 흐르는 것 같으리.
*이욱(李煜)은 남당(南唐)의 후주(後主)로서 마지막 황제이며, 송에 멸망하여 그는 강남에서 개봉으로 붙잡혀 와서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사(詞)'에 있어서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 "우미인"이라는 송사는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일 뿐아니라, 이 시를 지음으로써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되니 절명사라고도 볼 수 있다.
*詠虞美人(영우미인): 우미인을 노래하다.
수많은 시인과 묵객이 우미인묘와 사당을 찾아오고 또 시를 남겼다.
한결같이 강개한 노래였다. 우미인을 그렇게 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 째 군왕에 향한 충성이다. 해하에서의 비극적 밤, 사면에서 들려오는
초나라노래소리에 철석같이 믿었던 강동자제 팔천병사가 떼를 지어
한나라 진으로 가서 항복하고, 숙부 ‘항백’, 고굉지신이라고 했던
'계포’와 ‘종리매’까지 항우를 버리고 떠났는데, 연약한 우미인은 혼자서
끝까지 항우 곁에 있다가 이별하게 될 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 떠나는
항우의 근심을 덜어 주었다, 이는 열녀 중 열녀였다. 우희의 자결은
현대식표현으로는 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고, 옛 표현으로는 주군으로
부터 받았던 사랑과 은총을 보답하기 위하여 칼 위에 엎어졌다고 하였다.
둘 째 항우와 주고받은 이별가는 천고의 절창(絶唱)이었다.
“대왕의 의기 다하니, 천첩이 어찌 살고자하리오?” 여기에 우미인의
한 자락 붉은 마음을 보이며, 여성으로 드물게 강개함이 나타난다.
셋 째 우미인 무덤에서 자란 우미인초 역시 사람을 감동케 한다.
초나라노래를 들음에 꽃이 일어나 춤을 추고, 다른 곡에는 반응이 없으니,
그녀의 혼이 우미인초에 의탁하였다고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한은 오강 물과 더불어 길이 유유(悠悠)히 흐른다. 그리하여 많은 시인,
묵객이 우미인을 대신하여 우미인의 한을 서술하였다. 우미인을
노래하는 詩(시)를 주로 썼지만, 詞(사)도 있어서 詩四十首
(시사십수)를 모았고, 또 詞三十餘首 (사삼십여수)를 찾았다.
그런데 우미인이나 우미인초 소재의 시와 사는 수와 당대에는 적고,
송, 원, 명, 그리고 청대에 많아졌고 그 뿐 아니라 현대에도 계속적으로
증가 일로의 추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