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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悌忠信爲吉德-退溪

시뜨락 시정(詩庭) 2024. 1. 21. 07:04


退溪先生文集 卷之四十二
序 鄕立約條序 【附約條】

康成階下多書帶 [강성계하다서대]
董子篇中有玉杯 [동자편중유옥배]
정현의 섬돌 아래엔 서대풀 많이 자랐고
동중서의 책 가운데엔 옥잔이 있구나

孝悌忠信爲吉德[효제충신위길덕]  
詩書禮樂皆雅言[시서예악개아언]
효도와 공경, 충성스러움과 신의는 곧 길상의 덕이요,
시와 서와 예와 악은 모두 한 말씀이라.

黃金萬兩未爲貴 [황금만양미위귀]    
得人一語勝千金 [득인일어승천금]
황금 만냥이 귀한 것이 아니요
좋은 말 한마디 듣는 것이 천금보다 낮다

好書不厭看還讀[호서불염간환독]    
益友何妨去復來[익우하방거복래]
좋은 글은 다시 읽어도 싫지 않고.    
유익한 벗은 어찌 갔다가 다시 오는 것이 방해가 되랴

兄友第恭 喜滿室 [형우제공 희만실]  
夫和婦順 敬如賓 [부화부순 경여빈]
형제가 우애있게 지내니 기쁨이 가득하고  
남편은 화애롭고 아내는 유순하니 손님같이 공경한다

賢人處世能三省[현인처세능삼성]
君子立身有九思[군자립신유구사]
현인 처세는 세 가지를 살피고    
군자 입신은 아홉 가지 생각이 있다

楓葉欲殘看愈好 [풍엽욕잔간유호]
梅花未動意先知[매화미동의선지]
단풍이 지려할 때 보기가 더욱 좋고  
매화는 움직이지 않으나 뜻은 먼저 안다

*이 사료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1556년(명종 11년) 예안향약(禮安鄕約)을 일으키고 경상도 예안 지방의 향촌을 교화하기 위해 자치 규약으로 쓴 것이다. ‘퇴계향약 약문(約文)’이라고 한다. 향약 규약문을 작성한 이황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다. 1528년(중종 23년) 사마시에 급제한 후 성균관에 들어가 김인후(金麟厚, 1510~1560)와 교유하였다. 1534년(중종 29년) 문과에 급제한 후 박사⋅지평 등을 거쳐 세자시강원문학⋅성균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548년(명종 3년) 단양 군수가 되었다가 곧 풍기 군수로 옮겼다. 풍기 군수 재임 중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세운 백운동서원에 편액(扁額)⋅서적(書籍)⋅학전(學田)을 내려 줄 것을 청하여 실현시켰다. 이것이 조선 시대 사액 서원의 시초가 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다. 1552년(명종 7년) 성균관대사성으로 임명되었으며, 1560년(명종 15년)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아호를 도옹(陶翁)이라 정하고, 많은 제자를 길렀다. 1568년(선조 1년) 선조(宣祖, 재위 1567~1608)가 즉위하자 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임금에게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를 올렸다. 그 뒤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