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미조(畵眉鳥)-구양수(歐陽脩)
百囀千聲隨意移 백전천성수의이
山花紅紫樹高低 산화홍자수고저
始知鎖向金籠聽 시지쇄향금롱청
不及林間自在啼 불급임간자재제
구성진 소리로 노래하는 새들이
꽃과 나무 사이를 오르내리네
이제야 알겠네 새장 속에서 울던 소리가
숲에서 부르는 노랫소리만 못하다는 걸
▶ 百囀千聲(백전천성): 소리의 변화가 많고 구성진 것을 가리킨다.
▶ 始(시): 비로소
▶ 金籠(금롱): 아주 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새장을 뜻한다. 여기서는 먹을 것이나 마실 것에 대한 걱정이 없고 춥고 더운 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환경을 가리킨다.

이 작품은 「郡齋聞百舌」이란 제목으로도 전하는데
‘畵眉鳥’와 ‘百舌鳥’ 모두 흰눈썹웃음지빠귀(학명: Garrulax canorus)를 가리킨다.
*구양수는 「啼鳥」라는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도
‘남창 아래서 잠 많은 건 봄날이 좋기 때문인데(南窗睡多春正美)
백설조는 새벽부터 날 밝기를 재촉하고(百舌未曉催天明)
꾀꼬리는 고운 빛깔로 그렇잖아도 귀여운데(黃鸝顔色已可愛)
혀 끝으로 조잘조잘 칭얼대는 아기 같네(舌端啞咤如嬌嬰)’라고 읊은 바 있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
북송北宋의 정치가 겸 문인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하였다. 길주吉州 여릉廬陵(지금의 쟝시성江西省에 속함) 사람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문구를 살 돈이 없어 어머니가 직접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가며 가르쳤다고 한다. 24살에 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아갔다. 인종과 영종 때 범중엄范仲淹을 중심으로 한 관료파에 속해 활약하다가 신종 때 동향의 후배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며 관직에서 물러났다. 송대 초기의 미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시로는 매요신梅堯臣과 겨루고 문장으로는 당송팔대가로 꼽히며 송대 고문의 위치를 확고부동하게 한 공이 있다. 전집으로 《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153권)이 있고, 《신당서新唐書》와 《오대사기五代史記》를 편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