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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이혼(倩女離魂)

시뜨락 시정(詩庭) 2025. 1. 9. 20:22

고사성어 천녀이혼(倩女離魂)
倩 예쁠천 離 떠날이 魂 넋 혼

천녀의 혼이 육체를 떠난다는 뜻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에 고민하다. 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정신이 나가 어리둥절한 상태를 넋이 나간다고 하는데 넋은 얼과 함께 영혼(靈魂)과 같은 말로 사람의 몸 안에서 육체와 정신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넋이라도 동양에서는 혼백(魂魄)이라 하여 혼(魂)은 정신을, 백(魄)은 육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과 같이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지만 '백'은 지상에 흩어져 귀신으로 떠돈다.

천녀는 당(唐)나라 대종(代宗)때 사람 진현우(陳玄祐)의 '이혼기(離魂記)'에 처음 등장한 이후 인물의 이름이 약간씩 바뀌면서 여러 시문에서 인용돼 유명해졌다. 離魂記 줄거리를 간단히 보면

옛날 장일(張鎰)이란 사람에게 천녀라는 미모가 뛰어난 딸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먼 친척의 아들 왕주(王宙)가 총명해서 나중에 부부가 되게 해 준다고 약속했다.
혼기가 되자 장일은 마음이 변하여 천녀를 높은 벼슬아치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상심하여 천녀는 드러누웠고 절망한 왕주는 고향을 떠나려고 강을 건넜다. 어두운 강기슭에서 왕주는 뒤따라온 천녀를 만나 부부가 됐고 5년을 행복하게 살며 벼슬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고향이 그리워져 장일을 찾아 용서를 구했는데 그때까지 천녀는 뒷방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고 했다. 배 안에서 기다리던 천녀를 데리고 오니 그 때에야 두 사람이 합쳐져 한 사람이 됐고 이후 행복하게 살았다.

이 애틋한 이야기가 송(宋)나라 무문혜개(無門慧開)의 설법서인 '무문관(無門關)'에도 실려 유명한 화두가 됐다. 여기에는 청녀(淸女)로 나와 선사가 제자들에게 묻는다. "청녀가 혼이 떠났는데,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진짜 청녀인가(淸女離魂, 那箇是眞底)?"

선사들은 이것을 우리의 본성은 진짜인가 거짓인가, 혹은 선심(善心)과 악심(惡心) 중 어느 것이 마음의 본체인가를 묻는 것이라고 한다.

천녀(倩女)든 청녀(淸女)든 혼이 육체와 떨어져 있었던 만큼 여성이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나 이루어지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성어가 됐다.

원대 정덕휘鄭德輝의 잡극 『천녀 이혼倩女離魂』은 바로 이것에 근거하여 지은 것이었고, 탕현조의 걸작인 『모란 정』(즉, 『환혼기還魂記』) 역시 여기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