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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豊折臂翁-白居易

시뜨락 시정(詩庭) 2024. 12. 18. 00:55

신풍절비옹(新豊折臂翁)-백거이(白居易)
<신풍에 사는 팔이 부러진 늙은이>

新豊老翁八十八 신풍노옹팔십팔
頭髮眉鬚皆似雪 두발미수개사설
玄孫扶向店前行 현손부향점전행
左臂憑肩右臂折 좌비빙견우비절
問翁臂折來幾年 문옹비절래기년
兼問致折何因緣 겸문치절하인연
翁云貫屬新豊縣 옹운관속신풍현
生逢聖代無征戰 생봉성대무정전
慣聽梨園歌管聲 관청이원가관성
不識旗槍與弓箭 불식기창여궁전
無何天寶大徵兵 무하천보대징병
戶有三丁點一丁 호유삼정점일정
點得驅將何處去 점득구장하처거
五月萬里雲南行 오월만리운남행
聞道雲南有瀘水 문도운남유노수
椒花落時瘴煙起 초화낙시장연기
大軍徒涉水如湯 대군도섭수여탕
未過十人二三死 미과십인이삼사
村南村北哭聲哀 촌남촌북곡성애
兒別爺娘夫別妻 아별야랑부별처
皆云前後征蠻者 개운전후정만자
千萬人行無一回 천만인행무일회
是時翁年二十四 시시옹년이십사
兵部牒中有名字 병부첩중유명자
夜深不敢使人知 야심불감사인지
偸將大石鎚折臂 투장대석추절비
張弓簸旗俱不堪 장궁파기구불감
從茲始免征雲南 종자시면정운남
骨碎筋傷非不苦 골쇄근상비불고
且圖揀退歸鄕土 차도간퇴귀향토
臂折來來六十年 비절내래육십년
一肢雖廢一身全 일지수폐일신전
至今風雨陰寒夜 지금풍우음한야
直到天明痛不眠 직도천명통불면
痛不眠, 終不悔 통불면, 종불회
且喜老身今獨在 차희노신금독재
不然當時瀘水頭 불여낭시노수두
身死魂飛骨不收 신사혼비골불수
應作雲南望鄕鬼 응작운남망향귀
萬人塚上哭呦呦 만인총상곡유유
老人言, 君聽取 노인언, 군청취
君不聞 군불문
開元宰相宋開府 개원재상송개부
不賞邊功防黷武 불상변공방독무
又不聞 우불문
天寶宰相楊國忠 천보재상양국충
欲求恩幸立邊功 욕구은행입변공
邊功未立生人怨 변공미립생인원
請問新豐折臂翁 청문신풍절비옹

*신풍(新豊) 땅에 사는 팔이 부러진 늙은이 이라는 뜻으로, 전쟁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의 험난한 삶을 비유하는 백거이(白居易)의 시 신풍절비옹(新豊折臂翁)은 백성의 고단한 삶을 노래한다.

신풍에 사는 여든여덟 살 노인네
머리카락 귀밑머리 눈썹 수염이 눈처럼 새하야네
현손의 부축 받으며 가게 앞을 지나는데
왼팔은 달려 있지만 오른팔은 부러져 있네
노인에게 팔 부러진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고
묻는 김에 어쩌다가 부러졌는지도 물었네
대답하길, 나는 본래 신풍 사람이라오
태평성대에 나서 전쟁이란 없었소
이원(梨園)의 풍류 소리에나 익숙했지
깃발이나 창, 화살은 알지도 못했소
난데없이 천보(天寶) 연간에 징집령이 내리니
집안 장정 셋 중 한 사람은 뽑혀 갔소
뽑아서는 어디로 몰아갔는가
5월에 만 리 먼 운남으로 보낸다는데
운남에는 노수란 강이 있다 하고
산초 꽃 질 때면 장기(瘴氣)가 인다 하였소
물이 끓어오르는 듯한 강을 걸어서 건너야 하는데
건너기도 전에 열에 두셋은 죽는다고 하더이다
남촌에도 북촌에도 슬픈 곡소리 배어 나오고
자식은 어버이와, 남편은 아내와 작별했소
모두들 말하길, 운남으로 갔던 사람
천만인데 돌아온 사람 하나 없다네
그때 내 나이 스물넷
병부첩에 이름이 있었소
밤 깊어 아무도 모르게
큰 돌로 내 팔을 잘라 버렸소.
활 당기고 깃발 드는 일 모두 감당치 못하니
그제야 운남 원정을 면하게 되었다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졌으니 어찌 아프지 않겠소만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팔 잘린 지 이제 예순 해
팔 하나 없어졌지만 한목숨 부지할 수 있었소
지금도 비바람에 으스스한 밤이면
팔이 아파 날 새도록 잠 못 이루기도 하오
아파서 잠 못 이뤄도 끝내 후회하지는 않는 것은
이 늙은이 혼자 살아남은 게 즐겁기 때문이오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 노수 가에서
죽어 혼이 떠났어도 뼈를 거두지도 못했을 것이고
운남에서 고향을 그리는 귀신이 되어
만인총(萬人塚) 위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을 것이오
이 노인 말 그대는 들으시오
그대 듣지 못했는가 개원(開元) 시대 재상 송개부(宋開府)는
변방에서 공을 세워도 상을 주지 않아 쓸데없는 전쟁을 막았음을
또, 듣지 못했는가 천보의 재상 양국충(楊國忠)은
황제의 은총을 입고자 변경에서 전공을 세웠음을
변방의 공을 세우기도 전에 백성들의 원한이 먼저 생겼음을
신풍 팔 끊어진 노인에게 물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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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백거이의 〈신악부(新樂府)〉 50편 가운데 제9편으로, 권력을 가진 자가 공을 세우기 위하여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백성들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전쟁은 당현종(唐玄宗) 때 양귀비(楊貴妃)의 오빠 양국충이 공을 세우기 위해 남조(南詔)와 일으킨 전쟁이다. 당시 양국충은 남조를 토벌하기 위해 8만 군사를 거느리고 원정길에 올랐다. 남조는 중국의 남서부 끝 운남성(雲南省)에 있던 백족(白族)이 세운 왕국으로, 9세기에는 미얀마, 타이, 베트남까지 세력을 넓혔던 강력한 왕국이다. 남조의 왕 각라봉(閣羅鳳)은 양국충에게 사죄하고 강화를 요청했으나, 무공을 세우는 데 급급했던 양국충은 이를 무시하고 전쟁을 벌이다가 그만 병력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6만의 전사자를 내고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신풍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의 동북쪽에 있는 현이다. 이원은 당현종이 몸소 양성한 가무단의 명칭이다. 송개부는 당현종 때의 재상 송경(宋璟)을 말한다. 개부(開府)는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의 약칭이다. 개원 초년에 돌궐(突闕)이 당나라의 변경을 침입했을 때 아장(牙將)이었던 학령전(郝靈筌)이 돌궐의 왕인 묵철(默啜)의 수급을 현종에게 바쳤는데, 송경은 이를 무용한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 하여 상급을 내리지 않았다.

자료; 고사성어대사전 | 저자김성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