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회고적오수 중 제2수 (詠懷古跡五首之二) - 두보(杜甫)
<고적에서 회포를 읊다>
【其二】송옥(宋玉)
搖落深知宋玉悲(요락심지송옥비)
낙엽지니 송옥의 슬픔 충분히 알겠네.
風流儒雅亦吾師(풍류유아역오사)
풍류와 선비의 기상은 나의 스승이다.
悵望千秋一灑淚(창망천추일쇄루)
서글피 천년을 생각하니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蕭條異代不同時(소조이대부동시)
쓸쓸하다는 그와는 서로 시대가 같지 않구나!
江山故宅空文藻(강산고택공문조)
강산의 옛집에 헛된 작품만 남겼는데
雲雨荒台豈夢思(운우황대기몽사)
운우의 무도한 양대(陽臺) 어찌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最是楚宮俱泯滅(최시초궁구민멸)
무엇보다 초나라 궁궐도 같이 사라졌으니
舟人指點到今疑(주인지점도금의)
뱃사공이 가리키는 곳은 믿을 수 없다.
역주1> 搖落深知宋玉悲(요락심지송옥비) : ‘搖落(요락)’은 가을이 되어 초목이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宋玉悲(송옥비)’는 송옥의 悲秋(비추)를 의미한다. 송옥의 〈九辯〉에 “슬프구나, 가을의 기운이여. 소슬하구나, 초목의 요락함과 쇠약해짐이.[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구절이 있다. 송옥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시인이었으며, 굴원(屈原)의 뒤를 이은 초사(楚辭)의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九辯(구변)〉은 그의 대표작품이다.
역주2> 風流儒雅亦吾師(풍류유아약오사) : ‘風流(풍류)’는 인품이 淸高(청고)한 것을 말한다. ‘儒雅(유아)’는 문학이 깊고 정밀함을 뜻한다. ‘吾師(오사)’는 송옥(宋玉)을 지칭한다.
역주3> 悵望千秋一灑淚(창망천추일쇄루) : ‘悵望(창망)’은 깊은 슬픔에 빠진 것이다. ‘一灑淚’는 눈물을 뿌리는 것이다. 여기서는 杜甫가 송옥을 추모하다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뿌린다는 의미이다.
역주4> 蕭條異代不同時(소조이대부동시) : 두보(杜甫)와 송옥이 각각 다른 시대에 살았으나, 그들 모두 회재불우(懷才不遇)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蕭條異代(소조이대)’라 표현한 것이다.
역주5> 江山故宅空文藻(강산고택공문조) : 송옥의 고궁(古宮)은 귀주(歸州:지금의 湖北省 稊歸縣)와 강릉(江陵:지금의 호북성 강릉현)에 있다고 전하는데 여기서는 귀주고택(歸州古宅)을 가리킨다. 三峽의 가운데 있으므로 여기서 ‘江山古宅’이라 이른 것이다. ‘空文藻’는 송옥이 일찍 세상을 떠나 부질없이 그의 辭賦만이 세상에 전한다는 뜻이다.
역주6> 雲雨荒臺豈夢思(운우황대기몽사) : 송옥의 〈高唐賦(고당부)〉 서(序)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초(楚)나라 회왕(懷王)이 고당(高唐)을 유람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한 부인이 나타나 스스로 칭하기를 ‘무산신녀(巫山神女)’라 하였다. 회왕은 그녀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이별에 임해서 무산신녀가 “저는 무산의 남쪽 고악산(高丘山) 험한 곳에 사는데, 아침엔 구름이 되고 저녁엔 비가 되어 아침이면 아침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양대(陽臺)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妾在巫山之陽 高丘之阻 且爲朝雲 暮爲作雨 朝朝暮暮 陽臺之下]”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남녀간의 사랑의 행위를 ‘雲雨之情(운우지정)’이라 불렀다. ‘荒臺(황대)’는 陽臺(양대)를 말하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 臺가 황폐해졌다는 뜻이다. 陽雲臺(양운대)는 지금의 사천성 무산현(巫山縣)의 양대산(陽臺山)에 있다.
이 시는 송옥의 고택을 지나다가 추모하며 지은 시이다. 송옥의 〈九辯(구변)〉, 〈高唐賦(고당부)〉와 같은 문장이 천고토록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음을 찬양하였고, 그의 고택(古宅)과 문장은 남아 있지만, 그의 생은 짧았던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두보는 송옥을 유신(庾信)과 더불어 자신의 스승이라 칭하는 동시에 그에게서 회재불우(懷才不遇)의 처량한 신세를 지닌 자신의 모습을 본다. 두보 역시 촉 땅을 떠나 삼협을 배로 전전하다가 남은 생을 곤궁하게 마친 인물이므로 삼협 근처에 있는 송옥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송옥을 조문하다가 감정이 촉발(觸發)되어 그와 비슷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것이다.
전반부는 송옥을 생각하였으니 이는 굴원(屈原)을 애도하는 것이요, 굴원(屈原)을 애도하는 것은 스스로를 애도하는 것이다. 후반부는 초왕을 억누르고 송옥을 높였으니, 송옥을 높인 것은 또한 스스로를 높인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詠懷古跡(영회고적)’이라는 것이다.

송옥(宋玉, 기원전 3세기)은 중국 고대의 시인으로 굴원의 초사의 후계자이다.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16편의 작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4편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 <구변(九辯)>만이 확실히 그의 작품이다. 세상의 쇠망과 자신의 불우함을 탄식하고, 가을의 쓸쓸함을 슬퍼하는 구절이 있는데, 굴원과 같은 절실함이 없다. 오히려 초나라 양왕과 운몽의 신녀와의 밀회를 노래한 <고당부>, <신녀부>가 유명한데, 이것은 송옥보다 후대의 작인 것 같다. 그러나 후세에는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의 밀회)이라는 성어(成語)가 되어, 송옥은 색정적인 서정작가로서 지목받게 되었다. <위키백과>
[출처] 영회고적오수 중 제2수 (詠懷古跡五首之二:고적에서 회포를 읊다 2/5) - 두보(杜甫)[당시삼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