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유령북역(題大庾嶺北驛)-송지문(宋之問)
<대유령 북역에서 시를 짓다>
陽月南飛雁,(양월남비안),
시월에 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傳聞至此回.(전문지차회).
들으니, 여기에 와서는 돌아간다고 말하네
我行殊未已,(아항수미이),
내 가는 길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何日復歸來?(하일부귀래)?
어느 날 다시 돌아가나
江靜潮初落,(강정조초락),
강은 고요한데 조수는 막 떨어지고
林昏瘴不開.(림혼장부개).
숲은 어둑하여 장기는 아직 열리지 않아
明朝望鄕處,(명조망향처),
다음날 아침 고향 있는 곳을 바라보면
應見隴頭梅.(응견롱두매).
응당 고갯마루의 매화꽃을 보리라
<宋之問(송지문)>
중국 당나라의 시인(656?~712). 자 연청(延淸). 산서성(山西省) 분양(汾陽) 출생. 675년 진사에 급제, 20세경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눈에 들어 습예관(習藝館) 상문감승(尙文監丞)이 된 것이 벼슬길에의 시발이었다. 그 후, 무후의 영신(佞臣) 장역지(張易之)에게 아첨하다가 지방으로 쫓겨났는데, 다시 돌아오자 역시 그때의 권력자 무삼사(武三思)에게 아첨하여 관직을 차지하는 등 파렴치한 행실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재주를 아끼고 사랑하던 중종(中宗)은 그를 수문관(修文館) 직학사(直學士)로 기용, 문학의 좋은 상대로 삼아, 군신(君臣)의 신분을 망각한 주연(酒宴)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 후에 현종(玄宗)이 즉위하자 영신을 추종하였다는 죄로 광동성(廣東省) 흠현(欽縣)으로 유배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심전기(沈佺期)와 함께 측천무후와 중종의 궁정시인으로, 연석(宴席)에서 시작(詩作)을 다투고 하여 ‘심송(沈宋)’이라 불렸다.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훌륭한 재능이 있었는데, 율시체(律詩體) 정비에 진력하여 심전기 ·두심언(杜審言) 등과 더불어 초당 후반의 문단에서 율시 유행의 선구로 공이 컸다. 문집에 《송지문집(宋之問集)》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지문 [宋之問]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