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阮籍의 詠懷詩 第三首

뜨락 시정(詩庭) 2024. 11. 10. 19:25

완적(阮籍)의
詠懷詩(영회시).三.

嘉樹下成蹊(가수하성혜)
보기 좋은 나무아랜 좁은 길이 생기는데
東園桃與李(동원도여리)
동원(東園)의 복숭아와 오얏나무라.
秋風吹飛藿(추풍취비곽)
가을바람 불어와 콩잎을 날리니
零落從此始(영락종차시)
이것을 따라서 시들어서 져버린다.
繁華有憔悴(번화유초췌)
무성했던 꽃들도 초췌하니 시들고
堂上生荊杞(당상생형기)
당상(堂上)에는 가시나무 자라고 있네.
驅馬舍之去(구마사지거)
이들을 버리고 말을 몰아서
去上西山趾(거상산서지)
서산(西山) 발치에나 들어가 숨어 버릴까?
一身不自保(일신불자보)
제몸 하나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데
何況戀妻子(하황연처자)
처자식들을 어찌 돌보겠다 하랴.
凝霜被野草(응상피야초)
서리가 들판을 뒤 엉겨서 덮었으니
歲暮亦雲已(세모역운이)
이 해도 역시 저물어 가는구나.

➀ 가수하성혜(嘉樹下成蹊) : 꽃이 피는 좋은 나무 아래로는 구경하는 사람이 다니므로 길이 생긴다. 한(漢)나라 때의 속담으로 좋은 나무는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를 말한다.
➁서산(西山) :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남쪽에 있는 수양산(首陽山)을 말한다. 주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를 멸하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는 주(周)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다가 굶어 죽었다.

*죽림칠현(竹林七賢)중 일인
완적(阮籍 210~263), 자(字)는 사종(嗣宗),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 사람이다. 성격은 오만(傲慢)하지만 마음이 넓고 술과 풍류(風流)를 즐긴 낭만주의자였다. 유가(儒家)의 명교(名敎)인 인의(仁義)를 반대하고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와 소요(逍遙)를 추구(追求)했다. 완적(阮籍)이 살았던 시대는 한나라가 망하고 조(曹)씨들의 위(魏)나라가 서고 다시 사마(司馬)씨의 진(晉)나로 교체되는 와중에, 혼란이 그치지 않아 많은 문인들이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그래서 완적(阮籍)과 같은 문인들은 변화무쌍한 현실에 도피하여, 허무주의에 입각한 노장사상의 길로 치닫는 기풍이 지배하게 되었다.
영회시(詠懷詩)는 모두 82수가 있는데 상당한 시일에 걸쳐 지은 것이다. 위(魏).진(晉)의 교체기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혼돈 상황에서의 이 연작시(連作詩)의 중심사상은 우주공간의 일체의 무상(無常)이라 할 수 있다. 우정의 무상, 생명의 무상, 부귀의 무상을 반복하여 읊었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 위(魏)·진(晉) 왕조 시절 완적(阮籍), 혜강(嵆康), 산도(山濤), 상수(向秀), 유령(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을 가리킨다. 정치 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을 주고받고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이다. 개인주의적·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이 그들의 근본 사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