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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北有高樓-古詩十九首5

白雲 2024. 8. 15. 03:17

古詩十九首五 (고시19수 중 제5수)
西北有高樓(서북유고루)
<서북쪽에 우뚝 솟은 누각>

西北有高樓(서북유고루),
上與浮雲齊(상여부운제).
交疏結綺窗(교소결기창),
阿閣三重階(아각삼중계).
上有絃歌聲(상유현가성),
音響一何悲(음향일하비).
誰能為此曲(수능위차곡),
無乃杞梁妻(무내기량처).
清商隨風發(청상수풍발),
中曲正徘徊(중곡정배회).
一彈再三歎(일탄재삼탄),
慷慨有餘哀(강개유여애).
不惜歌者苦(불석가자고),
但傷知音稀(단상지음희).
願為雙鴻鵠(원위쌍홍곡),
奮翅起高飛(분시기고비).

서북쪽에 우뚝 솟은 누각
하늘 위 구름에 닿는 듯하다.
격자 창에는 비단 휘장 걸려있고
아각(阿閣)으로 오르는 길은 세 겹 층계라네.
그 위에서 들려오는 거문고 노래 소리
어찌 그리 구슬프게 울려 퍼지나.
누가 이리 능숙하게 부를 수 있을까
기량(杞梁)의 처 외에는 있을 수 없네
청상곡은 바람결에 떠돌다
곡 중간에 이르러 굽이굽이 맴도네.
탈 때마다 거듭 세 번 탄식하니
원통하고 분한 마음속에 슬픔이 이누나.
노래하는 이의 괴로움은 애처롭지 않고
지음(知音)하는 이 드문 것에만 애태우네.
원컨대 한 쌍의 기러기와 고니 되어
날개를 떨치며 높이 날아갔으면.

[문선]古詩十九首其五 (고시19수중 제5수)
西北有高樓(서북유고루) - 無名氏(무명씨)
<서북쪽에 우뚝 솟은 누각>

서북쪽의 높은 누각에서 거문고를 타며 부르는 노래 소리가 너무나 구슬프게 들려 그 소리를 듣고 감탄하여 거문고를 타는 사람과 같이 한 쌍의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읊었다.
○ 杞梁妻(기량의 처) : 진시황제 때 범기량(杞梁妻)의 처 맹강녀(孟姜女)는 신혼 초에 남편 범기량(范杞良)이 만리장성 공사에 끌려가게 되어 엄동설한에 남편이 입을 옷을 지어 몇 달을 걸려 만리장성에 도착하였으나 남편은 이미 죽었고 더군다나 남편의 시신도 장성 성벽 밑에 묻혀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맹강녀(孟姜女)가 대성통곡을 하자 성벽 800리가 무너져 내리며 수많은 유골들이 드러났다. 그녀는 각각의 유골에 손가락을 깨물어 핏방울을 떨어뜨려 마침내 남편의 시신을 찾아냈다. 그의 시신을 10일 동안이나 부둥켜 앉고 통곡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녀의 슬픈 통곡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성벽까지 무너뜨렸다는 전설이 되었다.
○ 鴻鵠(홍곡) : 큰 기러기와 고니
○ 知音(지음) :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거문고 달인 유백아(兪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나무꾼 종자기가 소리만 듣고도 백아의 속마음을 읽어 냈다는 고사로 "지음(知音)"은 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를 뜻하게 되었다.

*맹강녀전설[孟姜女传说]

백사전전설(白蛇传传说), 우랑직녀전설(牛郎织女传说), 양축전설(梁祝传说)과 함께 중국 4대 민간고사(民间故事)의 하나인 ‘맹강녀곡장성(孟姜女哭长城)’의 여주인공인 맹강(孟姜)에 대한 전설. 맹강(孟姜)은 강(姜) 씨 집안의 장녀라는 뜻으로 시경(诗经)의 소아·유여동차장(小雅·有女同车章) 등 여러 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현재 전해오는 이야기의 핵심은 당대에 완성된 것으로 일반적인 전설에 따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맹강녀(孟姜女)는 진시황 때의 여인으로 신혼 초에 남편 범기량(范杞良)이 만리장성 공사에 끌려가게 되었다. 맹강녀(孟姜女)는 엄동설한에 남편이 입을 옷을 지어 몇 달을 걸려 만리장성에 도착하였으나 남편은 이미 죽었고 더군다나 남편의 시신도 장성(长城) 성벽 밑에 묻혀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맹강녀(孟姜女)가 대성통곡을 하자 성벽 800리가 무너져 내리며 수많은 유골들이 드러났다. 그녀는 각각의 유골에 손가락을 깨물어 핏방울을 떨어뜨려 마침내 남편의 시신을 찾아냈다.
이때 진시황이 맹강녀(孟姜女)의 미모를 보고 그녀를 첩(妾)으로 삼고자 하자 맹강녀(孟姜女)는 진시황이 친황다오(秦皇島)에 가서 남편 범기량(范杞良)을 위해 상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줄 것을 요구하였다. 진시황이 이에 응하며 범기량의 제사를 마치자 맹강녀(孟姜女)는 남편의 시신을 받쳐 들고 현재 맹강녀묘(孟姜女廟)가 위치한 산하이관(山海关) 앞의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맹강녀(孟姜女)는 좌전·양공23년(左传·襄公二十三年)에 기재된 제국(齐国)의 무장(武将) 기량(杞梁)의 처라고도 하고 있으며 이름과 성은 미상이다. 한대 유향(刘向)의 열녀전(列女传)에서는 맹강녀(孟姜女)가 통곡하며 울부짖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맹강녀(孟姜女)는 자식이 없고 가까운 친척도 없어 돌아갈 곳이 없으며 남편의 시신 또한 성벽아래 깔렸다는 것을 알고 통곡하자 지나가는 행인까지도 모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고 10여일 후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고 하였다.

수당 시대의 악부(乐府) 중 송의지곡(送衣之曲)이라는 곡에는 남편이 엄동설한에 입을 옷을 지었던 내용이 추가되었고 당대 관휴(贯休)는 기량처(杞梁妻)라는 시를 지어 진(秦)의 무도(无道)함을 탓하기도 하였다. 이 전설은 당시의 상황과 후대의 이야기가 큰 차이가 없이 전해 내려왔으며 기량(杞梁)은 이후 만희량(万喜良) 혹은 범희량(范喜良)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고 그 처는 맹강녀(孟姜女)로 칭해지게 되었다. 원대(元代)에는 맹강녀(孟姜女)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려져 상연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시(秦皇岛市, 진황도시) 산하이관 부근에는 맹강녀 사당인 맹강녀묘(孟姜女庙)가 건립되어 있으며 또한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만리장성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맹강녀전설 [孟姜女传说]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총람, 2011. 7. 1., 도서출판 황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