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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山放鶴圖

시뜨락 시정(詩庭) 2024. 1. 9. 07:35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는 설산을 배경으로 곁에 시동을 둔 처사(處士)가
막 꽃이 피어나는 매화나무에 기대어 하늘로부터 날아드는 백학을 바라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북송대 항주의 시인 임포(林逋, 967~1028)가 서호(西湖)의 고산에서 은거했던 장면을 그린 것으로 이런 그림을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라 한다.
화면 상단 중앙에는 孤山放鶴 謙齋 [고산방학 겸재]라 적혀있고 좌측 화제는 이렇다.

鳴似聞之, 香似播之, 曷若無聲無臭
[명사문지, 향사파지, 갈약무성무치]
울음이 들리는 듯하고,
향기가 퍼지는 듯하지만,
어찌 들어도 소리 없고,
맡아도 냄새 없는 것 같겠는가.

화제에 적힌 그대로 임포가 은거했던 고산의 서호에서 처(매화)의 등에 기대 자식(학)을 바라보는 임포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인물과 학에만 하얀 호분을 칠했고 복건과 학창의의 푸르스럼한 색은 임포의 고고함을 나타내는 듯 눈이 시리다.
정선의 작품 속에는 만족스럽게 인생을 보낸 자의 기품과 여유가 들어 있다.
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
즉, 맑고 깨끗한 임포의 모습,
매화와 학 등의 생물들, 배경을 이룬 서호의 고산 등은 오랜 시간이 경과되면서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는데, 동양의 선비들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상적인 삶을 투영시키곤 하였다.
존경받았던 임포(林逋, 967~1028) 등의 선인들이 거처했던 장소는 서로 연결되어 이상지가 되었으며,
아울러 생물의 자연적인 특성에 부여된 상징성을 지닌 매화 등은 그들의 고결한 삶의 이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동양 선비들이 그림에 무엇을 담아 표현하고자했으며,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삶은 무엇이었는지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설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주인공 임포는 항주에서 활동했는데,
세속에서 물러나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서옥을 짓고 평생 청빈하게 살았기에
고산처사(孤山處士)라 불렸다.
그는 고산에 매화를 심어놓고 은거하면서 학과 사슴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는데,
술을 마시고 싶으면 사슴의 목에 술병을 걸어 술을 사러 보냈고 손님이 오면 공중에서 학이 울어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집 주변에 매화나무를 심어 매화를 감상하고 시를 읊으며 세월을 보냈다고 하여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 즉,
매화를 부인으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임포 등 명사들과 서호 일대 승경들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문학 등에 지속적으로 애호되다가
점차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장소가 되었으며 점차 일정한 유형을 이루었고
그림의 주제로도 즐겨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 그림의 배경을 이룬 눈 쌓인 산은 속세를 떠나 은거하고자 하는
문인들의 고아한 뜻을 드러내는데 즐겨 사용되었다.
속세의 더러움이 하얀 눈 속에 감추어질 수 있었고
눈 덮힌 적막함은 은일처사의 쓸쓸한 정감을 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외에 추운 눈속에서 꽃을 피워 지조를 상징하는 군자의 꽃인 매화는 주인공 임포와 관련해 군자의 의미 이외에 은일의 의미가 부가되었다.
특히 임포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중

衆芳搖落獨暄姸 [중방요락독훤연]
모든 꽃들 다 졌는데 홀로 아름다워
占盡風情向小園 [점진풍정향소원]
풍정을 독점하고 정원을 향하였네
疎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맑고 얕은 물 위에 성긴 그림자 가로 비끼고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황혼 녘 달빛 속에 은은한 향기 떠도누나.

유명한 이 매화 시구는 많은 선비들에게 회자되었기에 은일처사와 어울리는 고결한 의미가 매화의 뜻에 부가되고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장수를 상징했던 신선의 새인 학 역시 임포의 고사로 인해 청빈한 은자의 벗이 되었다.
이렇듯 '고산방학도'는 임포라는 명사와 서호라는 장소 그리고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 등이 한 화면에 결합하여 은일처사의 고아한 삶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정선(鄭敾), 고산방학(孤山放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