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中偶書>
寺在千峯裏 幽深未易名
사재천봉리 유심미이명
開窓便山色 閉戶亦溪聲
개창편산색 폐호역계성
<한가한 중에 우연히 쓰다>
천봉 가운데 잠겨 있는 절 깊고 그윽함 말할 수 없네. 창문을 열면 산빛이 들고 문을 닫아도 시냇물 소리.
유심幽深: 그윽히 깊음.
미이명未易名: 쉽게 이름 붙이지 못한다.
편便: 문득.
-천봉 속
충지 冲止, 1226-1292
충지 스님, 그의 속명은 위원개(魏元凱)다. 19세에 과거에 급 제하여, 승승장구 앞길이 환히 열린 젊은이였다. 그러다 작 심한 바 있어 머리 깎고 승려가 되었다. 속세를 훌훌 떠나 깊 은 산속 절집에 산다. 그 깊고 그윽한 맛은 언어로는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다. 찾는이 없어 쓸쓸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들창을 열면 사시 푸른 산빛이 슬며시 고개를 디 밀고, 문을 닫아걸어도 시냇물 소리는 빗장을 타넘고 들어온다. 꼭 짜면 푸른 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다.
충지(冲止, 1226~1293)는 고려 후기 송광사 16국사 중 제6대 국사로, 속명은 위원개(魏元凱), 자호는 복암(宓庵), 시호는 원감국사(圓鑑國師) 입니다. 그는 사대부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지냈으나, 29세에 출가하여 선불교(禪佛敎)에 깊이 몰두했으며, 시와 문장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당대 유림의 존경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