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추억(追憶)-윤동주>
봄이 오는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停車場)에서
희망(希望)과 사랑처럼 기차(汽車)를 기다려,
나는 푸라트·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털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었다.
기차(汽車)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ㅡㅡ 동경교외(東京郊外) 어느 조용한
하숙방(下宿房)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希望)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汽車)는 몇번이나 무의미(無意味)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停車場)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ㅡ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1942년 5월 13일
[출처] 윤동주 시 - 사랑스런 추억(追憶)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