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1 6

연애 - 안도현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

카테고리 없음 2024.09.01

산에는 산만 있을까-문정희

저 산에는 과연 산만 있을까 초록 머리칼을 날리며 뜻밖에도 천 살에 가까운 젊은이가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의 눈썹 위로 달이 떠오를 때면 짐승들이 상처난 무릎을 세우고 앉아 기도를 피워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절마다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고 시시각각 눈빛이 다른 투명 거울이 있어 그 앞에서 다투어 여자들이 연한 속옷을 갈아입는 것은 아닐까 내 안에도 나 말고 천둥과 벼락이 살고 있듯이 안개 속에 이마를 숨기고 남몰래 녹아가는 바위가 있듯이 저 산에도 천둥과 벼락이 살고 있을지도 몰라 거친 숨을 내뿜으며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이 순간에도 누군가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지도 몰라 고산병에 휘청거리며 이쯤에서 그만 산을 내려갈까 말까 산 중턱에서 나처럼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몰라 / 문정희 시집 『양귀비..

카테고리 없음 2024.09.01

노래의 날개를 타고 ...하이네

노래의 날개를 타고, 나의 사랑이여, 내 너와 함께 가련다. 갠지스 강의 들판 저편으로, 거기에 나는 가장 아름다운 곳을 알고 있다. 고요히 흐르는 달빛 아래 빠알간 꽃이 가득 핀 정원이 있고, 연꽃들은 그곳에서 사랑스런 자매를 기다린다. 제비꽃들은 소리죽여 웃으며 애무하고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보며, 장미꽃들은 몰래 귓속말로 향기로운 동화를 주고받는다. 온순하고 영리한 영양(羚羊)들은 깡충깡충 뛰어와 숨어서 기다리고, 머얼리서 성스러운 강의 물결이 파도치는 소리 들려온다. 그곳 야자나무 아래 우리 함께 내려앉아, 사랑과 안식을 마시며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카테고리 없음 202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