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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聖 司馬遷의史記

白雲 2024. 6. 27. 03:05

太史公曰:
余述歷黃帝以來至太初而訖,百三十篇。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황제(黃帝)로부터 태초(太初)[1]에 이르기까지의 사실(史實)을 서술하였으니, 이는 모두 130편이다.”
《사기》(史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중국 역대 대표 역사서 24사 중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자 유일한 통사(通史)이다. 고대~전근대 동아시아 역사서의 틀을 만들어낸 위대한 기록물로 손꼽히며, 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이자 중국 24사의 으뜸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역사서 서술의 대표적 방식 중 하나인 기전체 양식을 성립한 사서이기도 하다.

*편찬 배경[편집]
중국 전한의 사마천이 상고 시대의 황제부터 한무제 태초 연간(기원전 104~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했다. 본격적인 저술은 기원전 108년 ~ 기원전 91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사마천의 아버지인 사마담 대에서부터 자료가 준비되었으리라 본다면 저술에 들인 기간은 더욱 늘어난다. 단 한 사람이 이렇게 방대한 기간을 다룬 역사서를 쓴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드물다.

사마천은 저술의 동기를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 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저술의 목표는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것으로 각각 설명하는데, 전체적 구성과 서술에 이 입장이 잘 견지되었다.

'사기'라는 이름 자체는 한나라 사람들이 사마천의 《사기》 이전에 쓰이던 역사를 부르던 명칭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의 본래 이름은 《태사공서》(太史公書)로, 후한 말에 《태사공기》(太史公記)로 바뀌었다가 이후 사람들이 《사기》라 줄여 사용했다.

《사기》(史記)의 의미를 살펴보면, '사기'란 제목에서 기(記)는 글자 그대로 기록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史)의 원래 의미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기사자(記事者)라고 하여
'문자를 이용해 어떤 일이나 사건을 기록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우리가 아는 '역사'(history)란 개념이 아닌, 직무의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사기》(史記)라는 제목은
기록하는 직분을 맡은 사관(史官)이란 사람이 어떤 일이나 사건을 기록하다.
는 뜻이라 할 수 있다. 출전 이런 이유로, 《사기》의 영문 번역명은 '史'의 중의적인 의미를 반영하여 'Records of the History'{역사의 기록(사기)}가 아니라 'Records of the Great Historian'{위대한 역사가의 기록(태사공서)}이다.

*司馬遷은 중국 전한의 역사가이자 《사기》의 저자로, 동양에서 역사학을 정립한 사람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은 위인이자 동양 사학계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위대한 역사가 중 한 명이다. 서양의 헤로도토스와 함께 동서양 역사학을 각각 대표하는 거물이다.

사마천

" 사마천의 사기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위대한 유산으로 우러러지나, 유철 이란 이름은 누가 기억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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