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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夜雨中/崔致遠

시뜨락 시정(詩庭) 2023. 12. 5. 15:48

秋夜雨中(가을밤 비는 오고)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니,
이 세상에 날 알아줄 이 드물구려.
깊은 밤 창밖에는 추적추적 비 내리고,
등잔불 앞 내 마음 구만리를 헤매노라.

*신라말기의 천재 최치원이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다. 최치원은 6두품 출신으로 868년 열두 살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6년 후 18세 때,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高騈)의 막하에서《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 후 신라로 돌아와 정치를 개혁하고자《시무십여조》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야산에서 은거하다 생을 마감하였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직후 당에서 쓴 글들을 모아『계원필경』을 지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으로 꼽힌다. 《추야우중》은 『계원필경』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서거정의 『동문선, 권19』에만 실려 있다.

이 시의 주제는 이 세상에 진실로 자신을 알아줄 이가 없다는 절대 고독이다. 시인은 제1구에서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 읊조린다.”라고 시상을 전개한다. 그리고 그 괴로움의 원인은 제2구에서 “세상에 날 알아줄 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이어 제3구의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의 밤비”는 시인의 울음소리요 눈물이다. 마지막 제4구 “구만리를 헤매는 등잔불 앞 내 마음”은 세상에 버림받아 정처 없이 떠도는 시인 자신의 마음이다. 특히 제3구와 제4구는 시간과 공간, 청각과 시각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심상의 전개와 구조적 연결성이 완벽한 작품으로 최치원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생노정에서 진정한 지음(知音)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우연히 만나는 것이지 찾으려고 애쓰서 되는 일이 아니다(可遇而不可求). 그런 의미로 본다면 자신을 알아주는 지음을 만난 사람은 세상에 온 보람이 있는 행운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 소개
신라 말기의 문인으로 자는 고운(孤雲) 혹은 해운(海雲)이다. 당에서 지은 시문이 1만여 편에 달하였으나, 귀국 후 정선하여 『계원필경』 20권을 만들었다. 진골귀족 중심의 신분체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함을 깨닫고 외직을 자원해 천령군(天嶺郡) 등 여러 곳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시무책 10여 조를 왕에게 올려 문란한 정치를 바로 잡으려 하였으나 신라 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떠돌다가 가야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그 뒤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사후 문창후(文昌侯)에 추시 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