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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씨어진 詩-윤동주

시뜨락 시정(詩庭) 2025. 9. 10. 03:35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년 6월 3일

원문
<쉽게 씨워진 詩>
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六疊房은 남의 나라、

詩人이란 슬픈 天命인줄 알면서도
한줄 詩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學費封套를 받어

大學 노ー트를 끼고
늙은 敎授의 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홀로 沈澱하는 것일가?

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詩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六疊房은 남의 나라、
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慰安으로 잡는 最初의 握手。

一九四二年六月三日

현재 세상에 알려진 윤동주의 마지막 시이다. 이후에 몇 가지 시를 더 쓴 것으로 파악되지만 일제가 파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를 쓴 지 1년 후에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옥사한다.
일반적으로 윤동주가 남긴 다른 시들과 달리 이 시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