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시경(詩經) 이야기

시뜨락 시정(詩庭) 2025. 8. 8. 15:48

시경(詩經)은 유교(儒敎). 유학(儒學) 의 교육및 교양 의 핵심적인 서책인 사서삼경(四書三經)중 書經 易經 과 함께 三經 을 이룬다
詩經은 기원전 11세기 부터 기원전 6세기에 걸친 중국 주(周)나라 치세 500여 년에 걸친 노래 모음집이다.
당시의 이 노래들을 '시(詩)' 라 하여 나라에서 采詩官을 두고 체시한 것과 백성들이나 제후들이 수집하여 올린 헌시(獻詩)들을 관리인 태사(太師) 나 사관(史官)이 정리 편찬한 것이다.
지방 제후봉국(諸侯封國)의 민요를 모은 국풍(國風) 이 다수이며 그외 궁중에서 신하들 과의 잔치 때에 쓰는 음악 소아(小雅) 왕실 조회때 쓰는 대아(大雅) 그리고 제례( 祭禮)의 송(頌)등으로 구성된다
천자는 이로 풍속.민심등을 살펴 치세에 참고하기도 하였다 한다.

기원전770년 천자국 주나라가 견융(犬戎)의 침략으로 중원 위하(渭河 또는 渭水) 주변 호경(鎬京-漢代에 長安 지금의 시안 西安) 에 자리를 잡았던  도읍을 동쪽의 낙읍(지금의 뤼양 洛陽)으로 옮기며 호경의 서주(西周) 시대를 마감하고 낙읍의 동주(東周)시대 즉 봉건제후국들이 발호하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로 접어들었는데 이때 제후국중의 하나인 노(魯)나라의 孔子(仲尼)가 당시 수집된 악보 3,000여편 중에서 3백여편을 모아 지금의 시경을 편찬했다는 산시설(刪削說)이있다.

이후 패권제후국들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거쳐 진(秦)의 통일로 명목만의 천자국 주(周)가 끝나고 이후 진(秦)의 시황제(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파묻음) 사건으로 자료들이 거의 다 사라지게 되는등 우여곡절을 거쳐 근근히 이어오다  12세기에 중국 남송의 朱子 (=주희朱熹)가 孔孟(孔子.孟子) 사상을 기반으로한 성리학(性理學)을 확립 이를 우리 조선왕조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에 따라 사서삼경 은 관리채용 시험 과목 으로 조선조 선비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퇴계 이황(退溪 李滉) 율곡 이이(栗谷 李珥)등 성리학의 대가들의 출현으로 까지 이루어졌다.

漢詩의 古典인 詩經
하도 오래되어 역사적 환경적으로 이해의 어려움에도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분들의 책자가 있어 그 내용을 빌려 틈틈히 소개 할까한다.
주참고:[홍익출판사간 심영환역 詩經]

關雎-詩經

關雎(관저) 關關雎鳩在河之洲 (관관저구 재하지주) 窈窕淑女 君子好逑 (요조숙녀 군자호구) 參差荇菜左右流之 (참치행채 좌우류지) 窈窕淑女寤寐求之 (요조숙녀 오매구지) 求之不得 寤寐思服 (

lazy-river.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