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昌宮詞(연창궁사)-元稹(원진)
連昌宮中滿宮竹(연창궁중만궁죽),
歲久無人森似束(세구무인삼사속)。
又有牆頭千葉桃(우유장두천엽도),
風動落花紅蔌蔌(풍동락화홍속속)。
宮邊老人爲余泣(궁변노옹위여읍),
少年選進因曾入(소년선진인증입)。
上皇正在望仙樓(상황정재망선루),
太真同憑欄干立(태진동빙난간립)。
연창궁(連昌宮) 안에 가득한 대나무
오랫동안 돌보는 사람 없으니 다발로 묶어 놓은 듯하네.
또 담장머리에는 천엽(千葉)의 벽도(碧桃) 있으니
바람 불자 꽃 떨어져 붉은 꽃잎 나부끼네.
궁궐 가의 노인 나를 보고 울며 말하되
소년 시절 뽑혀 일찍이 궁중에 들어갔었는데
상황(上皇)이 바로 망선루(望仙樓)에 계시니
태진(太眞)이 함께 난간에 기대어 섰습니다.
○ 連昌宮(연창궁) : 당(唐)나라 황제의 행궁(行宮) 중의 하나로 고종(高宗) 현경(顯慶) 3년(658)에 지어졌는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의양현(宜陽縣) 서쪽 19리 지점에 있었다.
○ 千葉桃(천엽도) : 벽도(碧桃)。선경에 있다는 전설 상의 복숭아.
○ 蔌蔌(속속) : 꽃잎이 어지러이 떨어지는 모습.
○ 上皇(상황),太真(태진):당 현종과 양귀비를 말한다.
○ 望仙樓(망선루) : 당나라 궁중에 있던 누대 이름
○ 太眞(태진) : 당 현종 이융기는 양옥환을 화산의 도사로 출가시켜 아들인 이모에게서 떼어놓고 궁내에 도교 사원인 태진궁(太眞宮)을 짓고 양옥환을 다시 이곳을 관리하는 여관(女冠)으로서 불러들였고 字를 태진이라 하였다.
樓上樓前盡珠翠(누상루전진주취),
炫轉熒煌照天地(현전형황조천지)。
歸來如夢復如癡(귀래여몽부여치),
何暇備言宮裡事(하가비언궁리사)。
初過寒食一百五(초과한식일백오),
店舍無煙宮樹綠(점사무연궁수록)。
夜半月高絃索鳴(야반월고현색명),
賀老琵琶定場屋(하로비파정장옥)。
누 위와 누 앞 모두 진주와 비취로 장식하니
현란하고 휘황하여 천지에 비추었습니다.
돌아와 보니 꿈인 듯 또 바보가 된 듯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궁중의 일 자세히 말하였겠습니까.
처음으로 일백 오일 지나 한식이 되니
가게와 집에 연기 없어 궁중의 나무 더욱 푸르렀습니다.
한밤중 달이 높이 떴는데 거문고 소리 울리니
악공(樂工) 하회지(賀懷知)가 비파 타며 장옥(場屋)을 정하였습니다.
○ 炫轉熒煌(현전형황) : 광채가 현란하고 휘황함.
○ 寒食(한식) :동지 뒤에 105일이 지나면 한식이 된다.
○ 賀老琵琶定場屋(하로비파정장옥) : 하로(賀老)는 악공인 하회지(賀懷知)로 唐나라 때 비파를 잘 타기로 유명하였다.
○ 場屋(장옥) : 본래 광장(廣場) 가운데 막으로 둘러친 과거시험장(科擧試驗場)을 뜻하는데, 광대나 악공(樂工)들의 놀이 무대(舞臺)도 이와 비슷하므로 장옥(場屋)이라 칭한 것이다.
力士傳呼覓念奴(역사전호멱염노),
念奴潛伴諸郎宿(염노잠반제랑숙)。
須臾覓得又連催(수유멱득우연최),
特勅街中許然燭(특칙가중허연촉)。
春嬌滿眼睡紅綃(춘교만안수홍초),
掠削雲鬟旋粧束(약삭운환선장속)。
飛上九天歌一聲(비상구천가일성),
二十五郎吹管逐(이십오랑취관축)。
고력사(高力士)가 전하여 고함쳐 염노(念奴) 찾으니
염노(念奴)는 몰래 악공(樂工)들과 짝하여 자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찾아내고 또 연달아 재촉하니
특명(特命)으로 길거리에 촛불 밝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아리따운 자태 눈 가득하고 붉은 비단 이불에서 자다가
구름같은 머리 빗질하고 곧바로 단장하여 띠를 묶고는
구천(九天)으로 날아올라 한 소리로 노래하니
이십오랑(二十五郞)이 노래에 맞추어 피리 불었습니다.
○ 高力士(고력사) : 당나라의 환관(684년~762년). 본명은 풍원일.
○ 念奴(염노) : 천보(天寶) 연간(742—756)에 가무를 잘하던 유명한 기생이다.
○ 九天(구천): 궁중(宫中)。
○ 二十五郞(이십오랑) : 스물다섯번째 랑(郞)이라는 뜻으로 빈왕(邠王) 이승녕(李承寧)을 가리킨다. 현종(玄宗)의 아우인데 피리의 명수였다.
○ 吹管逐(취관축) : 피리로 반주를 함
逡巡大徧涼州徹(준순대편양주철),
色色龜茲轟錄續(색색구자굉록속)。
李謨擪笛傍宮牆(이모엽적방궁장),
偷得新翻數般曲(투득신번수반곡)。
平明大駕發行宮(평명대가발행궁),
萬人鼓舞途路中(망인고무도로중)。
百官隊仗避岐薛(백관대장피기설),
楊氏諸姨車鬪風(양씨제이거투풍)。
어느덧 대편(大徧) 양주곡(梁州曲) 다 연주하니
여러 가지 구자곡(龜玆曲) 연이어 울렸습니다.
이모(李謨)는 피리 잡고 궁중의 담 옆에 있으면서
새로 작곡한 몇 개의 곡조 훔쳐 베꼈습니다.
해 뜰 무렵 대가(大駕)가 행궁(行宮)을 출발하니
수많은 사람들 길 가운데에서 북 치며 춤추었습니다.
백관(百官)과 의장행렬 기왕(岐王)과 설왕(薛王) 피하였고
양씨(楊氏)의 자매들 바람과 싸우듯이 수레 몰아 갔습니다.
○ 逡巡(준순) : (나아가지 못 하고) 뒤로 멈칫멈칫 물러남
○ 逡巡大徧梁州徹(준순대편양주철) : 대편(大徧)은 大遍이라고도 하며 양주(梁州)는 당(唐)나라 교방(敎坊)의 곡명(曲名)으로 본래 서량(西凉)의 곡명(曲名)인데 대편(大徧)과 소편(小徧)으로 나뉘었다. 김륭(金隆)의 《勿巖集(물암집)》 4권에 “逡巡(준순)은 잠시라는 뜻이니, 어느덧 이미 양주곡을 두루 연주했다는 것이다. 철(徹)은 파한다(끝낸다)는 뜻이다.” 하였다.
○ 龜玆(구자) : 옛날의 악곡(樂曲) 이름으로 본래 구자국(龜玆國)의 악곡이었다. 구자국은 한대(漢代)에 서역(西域)에 있던 여러 나라 중의 하나이다.《隋書 樂志 下》
○ 李謨擪笛傍宮牆(이모엽적방궁장),偷得新翻數般曲(투득신번수반곡) : 명황(明皇)이 상원(上元)날 밤에 몰래 등불 아래에서 놀았는데, 홀연히 누대 위에서 피리 부는 소리를 들으니, 전날 저녁에 새로 지은 곡조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크게 놀라 은밀히 피리부는 자를 잡아다가 힐문하니, 말하기를 “어젯밤에 몰래 천진교 위에서 달을 구경하다가 궁중에서 연주하는 곡조를 듣고는 마침내 다리 기둥에다 손톱으로 악보를 그려 기억하였다.” 하였다. 그의 성명을 물으니 이모(李謨)라 하였다. 명황은 기이하게 여겨 물건을 하사해 주고 가게 하였다.
○ 平明(평명) : 아침 해가 뜨는 시각. 해가 돋아 밝아 올 무렵.
○ 大駕(대가) : 황제의 거마。
○ 百官隊仗避岐薛(백관대장피기설) : 기설(岐薛)은 당(唐) 현종(玄宗)의 아우인 기왕(岐王) 이범(李範)과 설왕(薛王) 이업(李業)을 가리킨다. 隊仗(대장)은 호위병과 의장행렬이다.
○ 楊氏諸姨(양씨제이) : 양귀비의 세 언니를 말한다. 현종은 양귀비의 큰언니를 한국부인, 셋째 언니를 괵국부인 여덟째 언니를 진국부인으로 봉하였다.
明年十月東都破(명년시월동도파),
御路猶存祿山過(어로유존녹산과)。
驅令供頓不敢藏(구령공돈불감장),
萬姓無聲淚潛墮(만성무성루잠타)。
兩京定後六七年(양경정후육칠년),
却尋家舍行宮前(각심가사행궁전)。
莊園燒盡有枯井(장원소진유고정),
行宮門闥樹宛然(행궁문달수완연)。
다음 해 시월 낙양(洛陽)이 격파되니
임금 다니시던 길 남아 안록산(安祿山)이 지나갔습니다.
백성들 몰아 식량을 요구해도 감히 감추지 못하니
만백성 소리 없이 남몰래 눈물 떨구었습니다.
장안과 낙양 평정된 후 육칠 년만에
나는 다시 집 찾아 행궁(行宮) 앞으로 왔습니다.
장원(莊園)은 불타 없어지고 마른 우물만 남았으며
행궁(行宮)의 작은 문에는 나무만 완연하였습니다.
○ 東都破(동도파) : 안록산이 낙양을 점령한 것을 말한다. 천보 45년 (755년) 안록산이 낙양을 점령했다.
○ 兩京(양경) : 서경인 장안과 동도인 낙양을 말한다.
○ 門闥(문달) : 작은 문
爾後相傳六皇帝(이후상전륙황제),
不到離宮門久閉(부도리궁문구폐)。
往來年少說長安(왕래년소설장안),
玄武樓成花萼廢(현무루성화악폐)。
去年敕使因斫竹(거년칙사인작죽),
偶值門開暫相逐(우치문개잠상축)。
荊榛櫛比塞池塘(형진즐비색지당),
狐兔驕癡緣樹木(호토교치록수목)。
舞榭欹傾基尚在(무사의경기상재),
文窗窈窕紗猶綠(문창요조사유록)。
그후 서로 여섯 황제 전해오니
이궁(離宮)에는 이르지 아니하여 오랫동안 궁문 닫혀 있었지요.
오가는 소년들 장안의 일 말하는데
현무루(玄武樓)는 세워지고 화악루(花萼樓)는 폐지했다 하였습니다.
지난해 칙사(勅使)가 대나무 베러 와서
우연히 문 여는 날 만나 잠시 서로 따라갔답니다.
가시나무와 개암나무 즐비하여 연못 메웠고
여우와 토끼 교만한 듯 어리석은 듯 나무사이에 뛰놀았습니다.
춤추던 누대 기울었으나 터는 아직 남아 있고
꽃무늬 창 그윽하나 깁은 아직도 푸르렀습니다.
○ 爾後相傳六皇帝(이후상전육황제) : 명황(明皇) 뒤로 또 숙종(肅宗)ㆍ대종(代宗)ㆍ덕종(德宗)ㆍ순종(順宗)ㆍ헌종(憲宗)의 여섯 황제를 전하였다.
○ 玄武樓成花萼廢(현무루성화악폐) : 옛날 궁궐 서쪽에 화악상휘루(花萼相輝樓)를 창건하였는데, 뒤에 또다시 현무루(玄武樓)를 세우고 마침내 화악루(花萼樓)를 폐하였다.
○ 勅使(칙사) : 임금의 명령으로 받은 사신(使臣)
○ 荊榛(형진) : 가시나무와 개암나무
○ 櫛比(즐비) : 많은 것이 빗살과 같이 빽빽하게 늘어섬
○ 文窗(문창) : 꽃 무늬 창
○ 窈窕(요조) : 그윽하다。부녀(婦女)의 행동(行動)이 얌전하고 정숙(貞淑)함
塵埋粉壁舊花鈿(진매분벽구화전),
烏啄風箏碎如玉(오훼풍쟁쇄여옥)。
上皇偏愛臨砌花(상황편애임체화),
依然御榻臨階斜(의연어탑임계사)。
蛇出燕巢盤鬪栱(사출연소반투공),
菌生香案正當衙(균생향안정당아)。
寢殿相連端正樓(침전상련단정루),
太眞梳洗樓上頭(태진소세루상두)。
晨光未出簾影黑(신광미출렴영흑),
至今反掛珊瑚鉤(지금반괘산호구)。
指向傍人因慟哭(지향방인인통곡),
却出宮門淚相續(각출궁문루상속)。
自從此後還閉門(자종차후환폐문),
夜夜狐狸上門屋(야야고리상문옥)。
먼지는 분 바른 벽 덮었는데 옛 꽃비녀 보였고
까마귀는 풍경(風磬) 쪼아 옥 부서지는 소리 났답니다.
상황(上皇)은 섬돌 가의 꽃 특별히 사랑하였는데
옛모습 그대로 예전의 어탑(御榻) 뜰에 임하여 비껴 있었습니다.
뱀은 제비집에서 나와 기둥머리에 서려 있고
버섯은 향로 탁자에 자라 집무실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침전(寢殿)이 단정루(端正樓)와 서로 연해 있는데
태진(太眞)이 누대 위에서 머리 빗고 씻던 곳이었습니다.
새벽 빛 나오지 않아 발 그림자 침침하였는데
지금까지 산호 갈고리 뒤집혀 걸려 있었습니다.
옆 사람 향해 가리키며 인하여 통곡하고
다시 궁문 나와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다시 궁문 닫히니
밤마다 여우와 살쾡이들 문과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 花鈿(화전) : 금속 꽃비녀
○ 風箏(풍쟁) : 연(鳶). 종이에 댓가지를 가로세로로 붙여 실을 맨 다음 공중에 높이 날리는 장난감
○ 蛇出燕巢盤鬪栱(사출연소반투공) : 김륭(金隆)의 《勿巖集(물암집)》4권에 “반투공(盤鬪栱)은 두공(斗栱)의 위에 서려 있는 것이니, 두공은 동자 기둥이 몰려 있는 곳이다.” 하였다.
○ 香案(향안) : 제사(祭祀) 지낼 때에 향료(香料)나 향합을 올려 놓는 상(床)
○ 衙(아) : 정문
我聞此語心骨悲(아문차여심골비),
太平誰致亂者誰(태평수치란자수)。
翁言野父何分別(옹언야부하분별),
耳聞眼見為君說(이문안견위군설)。
姚崇宋璟作相公(요숭송경작상공),
勸諫上皇言語切(권간상황언어절)。
燮理陰陽禾黍豐(섭리음양화서풍),
調和中外無兵戎(조화중외무병융)。
나는 이 말 듣고 마음과 뼛골까지 슬퍼지니
태평을 이룬 것 누구이며 나라를 어지럽힌 것 누구인가.
노인 말하기를 촌늙은이가 무엇을 분별하겠습니까마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 그대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이 상공(相公)이 되어서는
상황(上皇)에게 권하고 간하는 말 간절하였습니다.
음양을 조화롭게 다스려 벼와 기장 풍년 들고
중외(中外)를 조화시켜 병란이 없었습니다.
○ 姚崇(요숭), 宋璟(송경) : 姚崇(요숭)과 宋璟(송경)은 모두 명황의 어진 재상이 되어 태평성대를 이룩하였다.
○ 燮理(섭리) : 음양을 고르게 다스림.
○ 中外(중외) : 안과 바깥. 조정과 민간
長官清平太守好(장관청평태수호),
揀選皆言由相公(간선개언유상공)。
開元之末姚宋死(개원욕말요송사),
朝廷漸漸由妃子(조정점점유비자)。
祿山宮裏養作兒(녹산궁리양작아),
虢國門前鬧如市(괵국문전료여시)。
弄權宰相不記名(농권재상불기명),
依稀憶得楊與李(의희억득양여리)。
장관들 청렴하고 공평하며 태수들 훌륭하니
인물을 선발함 모두 상공(相公)에게 말미암는다고 말했습니다.
개원(開元) 말엽에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이 죽으니
조정은 점점 양귀비에게 말미암게 되었습니다.
안록산(安祿山)이 궁중에 들어와 양자(養子) 되었고
괵국부인(虢國夫人) 문 앞은 시장처럼 시끄러웠습니다.
권력을 농간한 재상 이름 기억할 수 없으나
어렴풋이 양씨(楊氏)와 이씨(李氏)로 기억합니다.
○ 朝廷漸漸由妃子(조정점점유비자) : 당(唐)나라가 혼란해진 계제(階梯)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 祿山宮裏養作兒(녹산궁리양작아) : 천보(天寶) 10년(751)에 안록산(安祿山)을 불러 궁중에 들어오게 하였는데 양귀비가 궁녀들로 하여금 그를 채색 가마에 태우게 하였다. 임금이 후궁들이 떠들고 웃는 이유를 묻자, 좌우의 사람들은 양귀비가 아이를 씻겨 주어서라고 대답하니, 임금은 기뻐하여 양귀비에게 洗兒錢(세아전:아이를 씻기는 돈)을 하사하였다.
○ 虢國門前鬧如市(괵국문전료여시) : 양귀비(楊貴妃)의 언니가 괵국부인(虢國夫人)에 봉해지니, 형세와 기염이 찌를 듯하여 사람들이 모두 아부해서 그 문이 시장과 같았다.
○ 楊與李(양흥리) : 당(唐) 현종(玄宗) 때의 권신(權臣)인 양국충(楊國忠)과 이임보(李林甫)를 가리킨다.
廟謨顛倒四海搖(묘모전도사해요),
五十年來作瘡痏(오십년래작창유)。
今皇神聖丞相明(금황신성승상명),
詔書纔下吳蜀平(조서재하오촉평)。
官軍又取淮西賊(관군우취회서적),
此賊亦除天下寧(차적역제천하녕)。
年年耕種宮前道(연년경종궁전도),
今年不遣子孫耕(금년불견자손경)。
老翁此意深望幸(노옹차의심망행),
努力廟謀休用兵(노력묘모휴용병)。
조정의 계책 전도되어 사해(四海)가 흔들리니
오십 년 이래 큰 상처되었습니다.
금황(今皇)께서 신성(神聖)하고 승상 현명하니
조서 내리자 오(吳)와 촉(蜀)이 평정되었으며
관군(官軍)이 또 회서(淮西)의 역적 사로잡으니
이 역적 또한 제거되자 천하가 평화로워졌습니다.
해마다 연창궁(連昌宮) 앞의 길에 밭갈아 심었는데
금년에는 자손 보내어 밭갈지 않았습니다.
이 늙은이의 뜻 황제(皇帝)가 오시기 깊이 바라서이니
부디 조정의 계책 잘 세워 용병(用兵)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 今皇(금황) : 여기서는 당(唐) 현종(憲宗)을 가리킨 것이다.
○ 吳蜀(오촉) : 오(吳)는 강남동도절도사(江南東道節度使) 이기(李錡)를, 촉(蜀)은 검남서천절도사(劍南西川節度使) 유벽(劉闢)을 가리킨다.
○ 瘡痏(창유) : 부스럼과 흉, 즉 조정의 상처가 되었음을 뜻한다.
○ 淮西賊(회서융) :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를 가리킨다.
○ 今年不遣子孫耕(금년불견자손경) : 이덕홍(李德弘)의 《艮齋集(간재집)》 속집(續集) 4권에 “도적들이 이미 제거되어 천하가 태평하기 때문에 더 이상 連昌宮 앞의 길에 밭갈고 씨뿌리지 않겠다고 말하였으니, 늙은이의 이 말은 황제(皇帝)가 오기를 깊이 바라서이다.” 하였고, 김륭(金隆)은 “전쟁이 일어나 자손들이 지난날처럼 궁궐의 앞길에 밭갈고 씨뿌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였다.
○ 深望幸(심망행) : 황제가 다행히 동도로 오기를 깊이 희망한다

*연창궁(連昌宮)은 당(唐)나라 황제의 행궁(行宮) 중의 하나로 고종(高宗) 현경(顯慶) 3년(658)에 지어졌는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의양현(宜陽縣) 서쪽 19리 지점에 있었다. 원화(元和) 13년(818) 원진이 통주사마(通州司馬)였을 때에 이 유명한 장편 서사시(敍事詩)를 지었는데, 연창궁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안사(安史:安祿山과 史思明)의 난을 전후로 한 당(唐)나라 정치의 어지러움의 원인을 탐색하였다.
*元稹(원진 : 779 ~ 831) : 자(字)는 미지(微之), 하남(河南: 지금의 河南省 洛陽市) 사람이다. 배행(排行)이 아홉째인 까닭에 벗들이 모두 그를 원구(元九)라고 불렀다. 교서랑(校書郞)· 감찰어사(監察御史)· 사부랑중(祠部郎中)· 지제고(知制誥) 등을 역임하였고, 당(唐) 문종(文宗) 때 무창군절도사(武昌軍節度使)가 되었는데 임소(任所)에서 죽었다.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元白(원백)’이라 불리며, 정원(貞元)부터 태화(太和)까지 30년 동안 시가(詩歌)의 통속화(通俗化), 대중화를 제창하였는데, 이를 ‘元和體(원화체)’라고 한다. 저서에 ≪元氏長慶集(원씨장경집)≫이 있고, ≪新唐書(신당서)≫와 ≪舊唐書(구당서)≫에 모두 전(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