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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김현승

시뜨락 시정(詩庭) 2025. 8. 20. 21:23

넓이와 높이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
나의 눈물에 해당하는....

산비탈과 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공허를 위하여 오늘은 저 황금빛
열매들 마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약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읍니다

지금은 기적들을
해가 지는 먼곳으로 따라 보내소서

지금은 비둘기 대신
저 공중으로 산 까마귀들을 바람에 날리소서
많은 진리들 가운데 위대한 공허를 선택하여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새 술을 빚어
깊은 지하실에 묻을 시간이 오면
나는 저녁 종소리와 같이 호올로 물러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마른 풀의 향기를 마실 것입니다

*가을의 시
김현승 (金顯承,1913-1975, 대한민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