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溪先生 詩(퇴계선생 시)
<時以司僕正來故使沙苑馬>
以事當還都至榮川
病發輟行留草谷田舍
少日事紳服訂頑(소일사신복정완)
至今慘學但慙顔(지금몽학단참안)
狂奔幸脫千重險(광분행탈천중험)
靜退纔嘗一味閒(정퇴재상일미한)
羈鳥有時依樹木(기조유시의수목)
野僧隨處著雲山(야승수처착운산)
後園花萼猶爭笑(후원화악유쟁소)
何必區區病始還(하필구구병시환)
<하인들이 도착할 예정이라 사원에서 말을 보냈다>
원래는 업무차 수도로 돌아가야 했는데, 영천에 도착했을 때 병이 나서 여행을 멈추고 초원의 농가에 머물렀다.
젊은 시절, 옷자락에 글을 적어(書紳) 스스로 경계하며 어리석음을 고치려 애썼으나,
지금까지도 배움에 어둡고 미혹하여 부끄러운 얼굴뿐이다.
광란하듯 달려가던 삶, 다행히도 천 겹의 험난함을 벗어났고,
고요히 물러나 이제 겨우 한 조각의 한가로움을 맛보게 되었다.
새장에 갇힌 새도 때로는 나무에 깃들고 싶어 하고,
들에서 방랑하는 승려는 어느 곳이든 구름 낀 산에 의탁한다.
뒤뜰의 꽃송이들은 아직도 서로 다투듯이 웃고 있는데,
어찌 굳이 병이 들어야만 고향으로 돌아오랴.
-退溪先生 文集에서
풀이
젊을 적에는 옷깃에 글을 적어 마음을 다잡고 어리석음을 고치려 애썼지만,
오늘날까지도 배우는 일에 어둡기만 해 부끄러움뿐이다.
세상일에 휘말려 정신없이 달려왔으나,
천 겹의 어려움에서 다행히 벗어나 이제야 비로소 고요한 한가로움을 맛본다.
갇힌 새도 나무에 기대고 싶어 하고,
방랑승도 구름 낀 산을 따라 머문다.
뒤뜰의 꽃은 여전히 활짝 피어 다투듯 웃는데,
무엇 때문에 병이 들어서야 돌아와야 한단 말인가.
*이 시는 퇴계 선생이 만년의 은거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젊을 적에는 학문을 힘써도 늘 부족함을 느꼈고,
세속의 벼슬길과 시비 속에서 벗어나 은거한 뒤에야 참된 한가로움을 맛보았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연 속의 삶이 본래 즐거운 것임을 말하며, 병이 들어서야 비로소 귀향하는 세속 사람들을 풍자·자책하는 듯한 어조도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