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다리-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
-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기욤 아폴리네르가 1921년 [파리의 밤]이란 잡지의 창간호에 발표했던 시이다. 그가 27세 때, 사랑하던 여인과의 이별 후에 쓴 시로서 현실과 추억 속의 갈등이 교차되는 가운데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시인의 고뇌가 담겨져 있다. 이 시 속에는 못다 이룬 사랑의 아픔과 추억의 되뇜이 반복되면서, 서정적 자아의 미묘한 갈등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서정적 자아는 세느 강물이란 세월의 무상함 속에 자신의 갈등을 투영하여 한층 성숙한 삶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