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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의 漢陽.漢江-14京郊名勝帖-木覓朝暾. 鞍峴夕烽. 楊花喚渡. 錦城平沙. 小岳候月. 宗海聽潮

白雲 2025. 6. 7. 07:05

<목멱조돈 木覓朝暾>

목멱조돈 木覓朝暾 비단에 채색 23.0×29.2 cm

<목멱조돈(木覓朝曦))은 이병연의 목멱산에서 아침 해 돋아 오르다[木寛朝歌]」라는 시를 화제(畵)로 그린 작품이다. 그림의 왼쪽, 문양이 새겨진 종이에 겸재가 이 시를 직접 써 놓았다.

'새벽 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시 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르리라.
(曙色浮江漢,觚稜際釣參,朝朝轉危坐,初日上終南)'

겸재가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뒤 사천과 시와 그림을 바꾸어 보자는 약속을 했는데, 이 시를 받은 뒤 겸재가 양천현의 현아(縣衛, 서울 양천구 가양동)에서 남산의 일출을 그린 것이다. 남산 높은 봉우리 중턱에서 붉은 태양이 반 너머 솟아오르자, 붉은빛은 동녘 하늘에 가득하고, 아직 미련이 남아 머뭇거리는 여명(黎明)의 잔영(殘影)은 골짜기마다 긴 그림자로
거뭇하게 남겨놓고 있다. 시화환상간의 약속은 이 그림으로부터 시작되었을 듯하다.

<안현석봉 鞍峴夕烽>

안현석봉 鞍峴夕烽 비단에 채색 23.0×29.2 cm

안현(鞍峴)은 길마재, 안산(鞍山) 또는 모악산(母岳山)이라 불리는 서울 서쪽의 외백호 산이다. 안현 정상의 봉수대(烽燧臺)에서는 매일 저녁마다 무사하면 봉화불을 하나 올렸다. 양천현령이었던 겸재는 현아(縣衙)에서 해질녘 안현의 봉화불을 보고 나라의 안위를 확인했던 것 같다. 이러한 겸재를 생각하며, 이병연은 안현의 저녁 봉화[鞍峴夕烽]」이라는 시를 지어 보냈다.

양화환도 楊花喚渡

양화환도 楊花喚渡 비단에 채색 20.8×31.2 cm

양화진(楊花津)은 한양에서 양천이나 김포·인천·강화 등 경기 서부지역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이며, 서울 마포구 합정동과 강 건너 영등포구 양화동의 양쪽 나루터를 모두 양화나루라고 했다. 이 그림에서 멀리 강 건너 보이는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이 잠두봉 (蠶頭峯: 용두봉龍頭峯, 절두산切頭山)이라 부르는 한양 쪽 양화나루이다. 그림 오른쪽에서 삼각형으로 솟아오른 산은 선유봉 (仙遊峯)으로 양천현 쪽 양화나루이다. 이 그림은 잠두봉이나 선유봉, 멀리 보이는 관악산, 광활한 백사장과 호수같이 너른 한강까지 강산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추었다. 이병연이 「양화나루에서 배를 부르다[楊花喚渡]」라는 시제(詩題)로 옮고, 겸재가 써서 그림 옆에 붙였다.

'앞사람이 배를 불러 가면, 뒷손님이 돌이키라 한다.
우습구나 양화나루, 뜬구름 인생 헛되이 오가는 것 같다.
(前人喚船去,後客喚舟旋,可笑楊花渡,浮生來往還.)'

<금성평사 錦城平沙>

금성평사 錦城平沙

<금성명사>는 현재 상암 월드컵 경기장과 난지도(蘭芝島) 일대의 조선시대 모습이다. 이곳은 한강 폭이 호수처럼 넓어지므로 서호(西湖)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곳이며, 모래내와 홍제천, 불광천이 물머리를 맞대고 들어와 모래섬인 난지도가 생성되었다. 그림의 중앙에 수평으로 그려진 큰 모래섬이 난지도이며, 그 뒤로 금성산(錦城山, 현재의 성산), 양화진의 잠두봉, 와우산과 남산 등이 아스라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양천현아 부근의 망호정(望湖亭) 일대를 근경으로, 강 따라 위쪽의 선유봉, 탑산 등을 원경으로 그렸다. 이병연이
"난간에 젖어드는 저녁 빛,
십리(十里) 석양호(夕陽湖)에 이어진다.
붓 들고 한참 생각하다가.
평사낙안도를 그려내다
(欄頭來晚色,十里夕陽湖,拈筆沈吟久,平沙落雁圖)"라는 시를 짓고 겸재가 그림 옆에 써 놓았다.

<소악후월 小岳候月>

소악후월 小岳候月 비단에 채색 20.8×31.2 cm

<소악후월>은 강서구 가양동의 궁산(宮山)에 있던 소악루(小岳樓)에서 달 뜨기를 기다리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소악루는 동복현감을 지낸 풍류문사 이유(李漾, 1675-1757)가 악양루(岳陽樓) 옛터에 지은 건물로 그림의 왼쪽 산기슭에 크게 그려져 있다 소악루에서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남산이 있는데 그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남산 산자락은 잠두봉으로 이어져 양화나루가 된다. 강 반대편에는 선유봉, 두미암, 탑산 등 한강변 명승을 줄지어 그려 놓았다. 소악루의 큰 기와집들은 숲속에서도 그 위세가 당당하지만, 그 아래 초가집은 그대로 달빛 어린 숲 그늘에 파묻힌 느낌이다. 이런 대조적인 표현이 보름달 뜨는 밤 소악루 주변의 경치를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巴陵明月出,先照此欄頭,
杜甫無題句,終爲小岳樓,

파릉(巴陵)에 밝은 달 뜨니,
이 난간머리에 먼저 비추네.
두보(杜甫) 시에 제구(題句)가 없으니,
마침내 소악루가 되었네.'

<종해청조 宗海聽潮>

종해청조 宗海聽潮 비단에 채색 20.8×31.2 cm

종해헌(宗海軒)은 양천현(陽川縣) 관아의 동헌(東軒) 이름이며, 양천현아가 성산(城山, 궁산) 남쪽 기슭 한강 가에 있었다. 서해바다의 큰 조석간만(潮汐干滿)의 차는 한강에도 영향을 미쳐, 종해헌에서는 강물과 바닷물이 서로 밀리지 않으려 힘겨루기를 하는 소리가 마치 거대한 소나무 숲속에서 이는 솔바람 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사천 이병연은

'크구나 너른 바다란 말 믿겠다. 감개 어린 채 앉아서 조수 노래 듣는다. 조종(朝宗) 길 막힌 후에, 하늘과 땅 노기(怒氣)만 가득하다.
(大哉滄海信,感概坐潮歌,路阻朝宗後,乾坤怒氣多.)'라는 시를 짓고, 이런 시정(詩情)을 화의(畵意)에 맞추어 겸재가 이 작품을 그렸다. 이 그림은 관아 뒷산인 성산에서 내려다 본 시각으로, 동헌인 종해헌을 중심에 넣고 부속 관사, 조수가 밀려드는 드넓은 한강의 난지도를 비롯한 모래섬을 남김없이 표현하고, 강 상류 동쪽에 남산, 서쪽에 관악산을 먼 산으로 그려놓았다.

겸재 의 漢陽.漢江-15 銅雀津. 龍汀返照. 義禁府圖

현재의 동작대교가 놓여 있는 동작나루를 강북 쪽에서 보고 그린 그림이다. 화면의 왼쪽 하단에는 단 한 번의 필획(筆劃)으로 땅과 강이 나누어져 있다. 이 땅은 강을 중심으로 북쪽에 해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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