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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의 漢陽.漢江-2 壯洞八景帖1

시뜨락 시정(詩庭) 2025. 6. 1. 08:00

<장동팔경첩 壯洞八景帖1>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본

장동팔경첩 壯洞八景帖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각 33.7×29.5 cm 간송미술문화재단

*76세경인 1756년에 제작한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의 <장동팔경첩> 이다.
장동(壯洞)은 서울 종로구 청운 효자동 일대로 창의문(彰義門) 아랫동네라고 하여 창의동(彰義洞), 장의동(壯義洞),
장동으로 불리던 곳이다. 장동 일대는 율곡학파(栗谷學派)의 여러 명현이 태어나 살던 곳이며, 정선도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 노닐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정선은 장동의 모습을 진경산수화로 정립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 장동의 여러 명소를 그림으로 담아내었다. 정선은 두 차례 장동의 주요 경치 8곳을 뽑아 화첩을 제작하였는데, 76세경인 1756년에 제작한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의 <장동팔경첩>과 80대 초반에 제작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장동팔경첩)이 있다. 두 화첩은 구성상 차이가 있는데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장동팔경첩>은 <자하동>, <청송당>, <대은암>, <독락정>, <취미대>, <청풍계>, <수성동>, <필운대>가 수록되어 있다. 정선이 노년기에도 화법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아 점차 추상화되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의 《장동팔경첩>이다. 이 작품을 65세 때 그린 <경교명승첩>과 비교해 보면, 대담한 구도를 구사하고, 산과 언덕,
수목 표현 등이 매우 간결해지는 특징이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의 <장동팔경첩>은 각 폭마다 정선이 직접 쓴 그림의 제목과 '겸재'라는 관지가 있으며, '정(鄭)', '선(散)'이라는 도장이 동일하게 찍혀 있다. 원래 낱장으로 전래되던 작품을 최근에 족자로 장황(裝潢)하였다.

<독락정 獨樂亭>

독락정 獨樂亭

독락정은 지금 청와대가 있는 백악산 동쪽 산골짜기에 있던 정자이다. 정선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 지역에 인원왕후 (仁元王后)의 외가댁인 조경창(趙景昌, 1634-1694)의 저택이 있었다 하므로 혹시 이 독락정도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정자가 아니었던지 모르겠다. 이 작품의 위쪽에는 백악산의 상봉과 지금도 의연히 앉아 있는 비둘기 바위를 그렸다. 그 아래로 계곡물이 골골마다 흘러내려 합쳐지는 여울목 반석 위에 띠풀로 지붕을 이은 정자를 그렸는데 이것이 독락정인 모양이다. 독락정을 향해 산줄기와 물줄기가 모여들었다가 아래로 빠지고, 능선 따라 배치한 소나무 숲의 표현도 독락정 쪽으로 집중되어 독락정의 분위기는 한결 그윽하게 느껴진다.

<대은암 大隱岩>

대은암 大隱岩

대은암은 청와대 본관 부근으로 남곤(南套, 1471-1527)의 집 바위를 대은(大隱)이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대은암동(大隱岩洞)에서는 구봉 송익필(龜峯 宋翼弼,1534-1599), 백록 신응시(白麓 申應時,1532-1585) 등 명현이 태어나 살았으며, 정선의 지기인 이병연도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여러 명문가가 자리 잡았던 대은암을 이 그림에서는 사당(堂)까지 갖춘 규모 있는 기와집과 만리뢰(萬里瀬)라는 이름이 붙은 개울 건너 초당(草堂)까지 건립한 모습으로 그렸다. 대은암 뒤편의 백악산 봉우리에는 듬성듬성 소나무를 그리고, 성글게 태점(點)을 찍고, 흰출하게 키 큰 노송과 나무들에 나무껍질을 그리지 않는 등 정선의 노년기 필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청송당 聽松堂>

청송당 聽松堂

청송당은 '솔바람 소리를 듣는 집'이란 뜻으로 조선 중기의 큰 선비로 이름나 있던 청송 성수침(聽松 成守琛, 1493-1564)의 독서당(讀書堂) 이름이며, 지금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89번지에 있었다. 정선이 살던 시대까지도 청송당은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던 듯, 이 그림에는 일자(一字)의 기와집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호젓하게 그려져 있다. 청송당 앞의 큰 석벽에는 '유란동(幽蘭洞)"이라는 글씨가 있었는데, 정선이 태어나고 평생 살았던 곳이다. 늙은 선비가 시동의 인도를 받으며 유란동 개울을 건너 청송당으로 향하고 있는데, 정선 자신의 모습인 것 같다. 울창한 솔숲과 절벽을 이룬 바위들을 임리(淋漓)한 묵법(墨法)으로 대담하게 그렸으며, 청송당의 조출한 모습과 솔숲의 그윽한 정취가 고즈넉하게 드러난다.

<자하동 紫霞洞>

자하동 紫霞洞

자하동은 지금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창의문(彰義門) 아래 북악산 기슭 동네 이름이다. 서울 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은 지금도 '자하문'이라고 부르며, 자하동은 자하문 아랫동네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에는 북악산 동쪽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언덕 아랫마을 중 큰 저택을 중심으로 그렸다. 이 저택은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없으나 뒤편의 사당과 여러 채의 기와집을 갖추고 있으며, 산동네에 큰 집을 짓기 위해 축대를 높이 쌓은 누마루 건물도 보인다. 북악산 서쪽 바위벼랑을 쇄찰법(刷擦法)으로 쓱쓱 쓸어내리고, 태점(點)을 군데군데 찍은 뒤 연하(煙霞)에 잠긴 듯 안개에 묻어버려 자하동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 내었다.
대담한 필선으로 처리된 나무, 장중하면서도 당당한 필법으로 여유 있게 처리된 건축물의 표현에서 정선의 노숙한 화풍을 실감할 수 있다.

<필운대 弼雲臺>

필운대 弼雲臺

필운대는 서울 종로구 필운동 9번지 일대로 인왕산 남쪽 줄기의 중턱에 가까워 서울 도성 안이 한눈에 조망되던 곳이다. 임진왜란 구국의 영웅들이었던 권율(權慄, 1537-1599) 장군과 그 사위 이항복(李恒福, 1556-1618)도 이 필운대 아래 살면서 평생 필운대 정취에 취해 살았다고 한다. 정선은 뒤편 인왕산 봉우리를 거의 생략해 버리고 낮은 구릉을 태점(點)과 흐린 윤곽선으로 간결하게 그렸다. 그 아래 필운대로 추정되는 석벽(石壁)을 분명하게 그리고, 석벽을 노송림(老松林)으로 가렸다. 필운대 아래에는 넓은 공터가 있는데 봄마다 서울 꽃 구경을 이곳에서 했던 모양이다. 이 그림은 물기가 적은 갈필(渴筆)로 바위와 소나무 등을 그려서 습윤(濕潤)하기보다는 까슬한 한여름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느낌이 든다. 필법으로 온습도를 조절하는 대가의 솜씨가 엿보인다.

<수성동 水聲洞>

수성동 水聲洞

수성동은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인왕산 계곡으로 골짜기가 깊고 그윽하며, 시내와 바위가 빼어나 여름에 노닐기 좋다는 평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의 비해당(匪懈堂)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그림 상단에는 인왕산을 상징하는 듯 거대한 바위 암벽을 먹으로 쓸어내려 표현하고, 좌우로 큰 바위들이 듬성듬성 박힌 사이로 물길이 나 있다. 계곡 주변 넓은 터에는 세 명의 노선비와 한 명의 시동이 서 있는데, 평생 인왕산을 오르내리던 정선과 친구들로 보인다. 이들이 방금 건너온 돌다리는 기린교(麒麟橋)이다. 이 수성동은 아파트로 뒤덮여 있었으나 모두 철거되고 복원되었으며, 기린교는 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제 여름 소나기 지난 뒤 수성동에 가면 이 그림의 흥취를 느낄 수 있다.

<청풍계 清風溪>

청풍계 清風溪

청풍계는 인왕산 동쪽 기슭의 북쪽에 해당하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52번지 일대의 골짜기를 일컫는 이름이다. 이곳은 원래는 푸른 단풍나무가 많아서 청풍계(青楓溪)라 불렀는데,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지키다 순국한 선원 김상용(仙源 全向容, 1561-1637)이 살게 된 뒤로 청풍계(淸風溪)로 바뀌었다 한다. 이 그림은 태고정(太古亭)에 초점을 맞춰 늠연당(凜然堂)과 청풍지각(淸風池閣) 등 건물을 오른쪽으로 배치하고, 만송강(萬松岡)과 창옥봉(蒼玉峯)을 왼쪽에서 대응하게 했다. 장맛비 그친 여름날의 경치인 듯 주변의 수림과 바위들이 물기에 젖어 온통 짙푸르게 표현됐다.

<취미대 翠微臺>

취미대 翠微臺

취미대는 청와대 동쪽 일대의 북악산 기슭이다. 그 앞에 넓은 들판이 호수처럼 비어 있고, 경복궁 터 북쪽 담장을 회색빛으로 그렸으며, 담장 안에는 노송(老松)과 잡수(雜樹)가 가득 우거져 있다. 경복궁 터 너머에는 남산을 우뚝하게 그려 놓았다. 넓은 들판은 국왕이 농사짓던 경적전(耕籍田)이며, 오른쪽 솔숲 사이 솟아난 암대(岩臺)에 세 선비가 있는 곳이 취미대로 보인다. 정선이 66세에 그린 <경교명승첩>의 <은암동록>과 거의 유사한 배경의 작품으로 약 10년 뒤에 그려진 이 <취미대>를 비교해 보면 10여 년간 얼마나 추상화하는 수련을 했을지 짐작이 된다. 산과 바위 언덕을 그리는 방법, 소나무를 그리는 방법이 모두 소소(疎疎)해졌다.

겸재 의 漢陽.漢江-3 壯洞八景帖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이 화첩은 정선이 80대 초반에 제작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장동 지역은 인왕산 남쪽 기슭에서 백악산 계곡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현재의 효자동과 청운동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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