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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去來兮辭-陶潛

白雲 2025. 7. 5. 03:14

<歸去來兮辭(귀거래혜사)陶潛(도잠)>

歸去來兮辭 田園將蕪 好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途基未遠 覺今是而昨非.  
舟搖搖而軽颺 風飄飄而吹衣.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자!  벼슬에서 물러나 내 집의 논밭으로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하고 있거늘, 어찌 돌아 가지 않을 것이냐?

이미 내가 잘못하여 스스로 벼슬살이를 했고 따라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혼자 한탄하고 슬퍼만 해야 하겠는가?

지난 일은 공연히 탓해야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고, 또한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

사실 내가 길을 잃고 헤매기는 했으나 아직도 그리 멀리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각성하여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잘못이었음도 깊이 깨달았노라.

집으로 돌아가는 배는 출렁출렁 가볍게 바람을 타고 떠가며, 표표히 부는 바람은 옷자락을 불어 날리고 있다.

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심정으로 길 가는 행인에게 앞으로 길이 얼마나 남았는가 묻기도 하고, 또 새벽 일찍 길에 나서며 아직도 새벽빛이 희끄무레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乃瞻衡宇 載欣載奔.
僮僕歡迎 稚子候門.
三徑就荒 松菊猶存.
携幼立室 有酒盈樽.
引壷觞以自酌 眄庭柯以怡顔.
倚南牕以寄傲 審容膝之易安.

마침내 저 멀리 나의 집 대문과 지붕이 보이자, 나는 기뻐서 뛰었다.

머슴아이가 길에 나와 나를 맞았고, 어린 자식은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은 온통 잡초에 덮이어 황폐해졌으나, 아직도 소나무와 국화는 시들지 않고 남아 있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술 단지에는 아내가 정성 들여 담근 술이 가득 차 있다.

술 단지와 술잔을 끌어당기어 혼자서 자작하여 술을 마시고, 뜰의 나뭇가지들을 보며 즐거운 낮으로 미소를 짓는다.

또 남쪽 창가에 몸을 실리고 남쪽 들을 내다보며 마냥 활개를 펴고 의기양양한 기분이 든다.  참으로 사람은 무릎을 드리울 만한 좁은 내 집에서도 충분히 안빈낙도(安貧樂道)할 수 있음을 실감한다.

園日涉以成趣 門雖說而常關.  
策扶老而流憩 時矯首而遐觀.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景翳翳而將入 撫孤松而盤桓.
歸去來兮 請息交以絶遊.  
世興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전원을 매일 거닐며 손질을 하자 제법 운치 있게 되었다.  또 대문이 있기는 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노상 닫혀져 있다.

지팡이를 짚고 이리저리 소요하다가 아무 곳에나 내 키는 대로 앉아 쉬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높이 추켜올리고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야심 없는 구름은 산골짜기로부터 유연하게 높이 떠오르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저녁에 제집으로 돌아 올 줄 안다.

아침 해도 어둑어둑 저물어 들어가려 할 무렵,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대고 맴돌고 있노라.

돌아왔노라! 이제부터는 세속적인 교제를 그만두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리!

속세와 나는 서로가 어긋나고 맞지를 않거늘, 내 다시 수레를 타고 무엇을 찾아 다닐까 보냐!

일가친척들과 정이 넘치는 이야기를 기쁜 마음으로 나누며, 한편 혼자 있을 때는 거문고나 책을 가지고 우울함을 해소한다.

農人告餘以春及 將有事于西疇.  
或命巾車 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经丘.
木欣欣以向榮 泉涓涓以始流.  
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으니, 앞으로는 서쪽 밭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거라고 말한다.

포장친 수레를 타고 육로를 가기도 하고, 또 혹은 혼자서 조각배를 젓고 물길을 따라 멀리까지 농사를 지으러 간다.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구불구불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가, 다시 이번에는 우툴두툴 높고 험한 산을 넘기도 한다.

나무들이 싱싱하게 즐거운 듯 뻗어나 자라고, 샘물들은 졸졸 솟아나 흐르기 시작한다.

만물이 때를 만나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내 자신은 이렇게 새봄을 맞는 사이에 차츰 인생의 종점으로 다가가서 죽을 것이니 감개 무량하게 느껴진다.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征 或植杖而耘耔.
登東皐以舒嘨 臨淸流而赋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아! 이제는 나의 인생도 그만인가 보다!  내 몸을 이 세상에 맡기고 살 날도 앞으로 얼마나 될지?

그러나 어찌 나의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죽으나 사나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러운 마음으로 욕심 내고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현실적으로 나는 부귀도 바라지 않고, 또 죽은 후에 천제(天帝)가 사는 천국에 가서 살 것 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때가 좋다 생각되면 혼자 나서서 거닐고, 또 때로는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매기도 한다.

동쪽 언덕에 올라서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모름지기 천지조화의 원칙에 따라 죽음의 나라로 돌아가자!  또 천명을 감수하며 즐긴다면 그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일 것이냐?

*도잠(陶潛, 365-427):
도잠의 자(字)는 연명(淵明)또는 원량(元亮)이라고 하며 호(號)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이다.  심양(潯陽) 시상(祡桑: 현 江西省)출신으로 29세 때 벼슬에 나가 주(州)의 제주(祭酒)가 되었으나 얼마 후 사임 하였다.   41세때 호구지책으로 평택에 현령이 되었으나 성정에 맞지 않아 80여일뒤 귀거래혜사를 쓰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  그 후 청빈을 달게 여기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와 술 그리고 자연을 즐기며 지냈기에 정절 선생(靖節先生)이라 불렀다.  그는 직접 노동을 경험하며 전원생활자체를 노래한 중국제일의 전원시인(田園詩人)으로 평가되고 있다. 귀거래혜사의 주제는 전원생활에의 동경으로 구속하는 사회적인 멍에를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즐거움을 노래했다. 도연명은 80여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직접적인 계기가 누이동생의 죽음 때문이라고 귀거래혜사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진서(晉書)및 남사(南史)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상관이 순시를 와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나와 맞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도연명은 “나는 쌀 다섯 말 때문에 촌뜨기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吾不能爲五斗米折腰)”라고 하며 즉시 인수(印绥)를 풀어 던지고 벼슬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이때가 서기 405년 41세때 일이다. 도연명은 서기 427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출전: 동양 삼국의 명 한시선(명문당, 안길환 편저)[이상 웹에서 옮김]
귀거래사(歸去來辭) -도연명(陶淵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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