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운탄 綠雲灘>

<경교명승첩> 상권은 한강변의 진경산수화로 꾸며져 있는데, 그 첫 그림이 현재 광주시 수청리의 큰청탄[大灘] 일대의 경치로 추정되는 (녹운탄(綠雲)>이다. '녹운탄'이라는 명칭은 우리말 '높은 여울(높은 탄, 高灘)'을 한자로 아취 있게 바꾼 것이다. 그림의 중심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너머 산 밑에는 번듯한 기와집들이 들어서 있다. 절벽 위에는 정자가 높이 지어져 있어 이름 있는 사람의 별서(别墅)로 보인다. 이 작품은 채색을 아끼던 조선시대 산수화답지 않게 청록색을 풍부하게 써서 화려한 느낌을 준다. 청록색의 진채(眞彩) 특성상 대담한 용묵법(用墨法)은 자제하고, 청록훈염법(青綠暈染法)을 주로 써 온유하게 나타냄으로써 그림이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우천 牛川>

<우천(牛川)>은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分院里) 일대를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도자기 제작을 담당하던 관청인 사용원(司餐院)의 현지 공장인 분원(分院)이 1718년에 설치되었다. 산 중턱에 그려진 기와집이 분원 건물로 보이며, 강변의 초가집은 도공의 살림집 혹은 작업장으로 추정된다. 울창한 잡목 숲으로 둘러싸인 분원의 아취 있는 정경에서 조선백자의 고고한 기품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먼 산은 군청색으로 문질러 놓아 원근감을 나타내고, 가까운 산은 온통 초록빛으로 칠해 구분했다. 바위나 벼랑은 군청색을 더하여 굳세고 으슥한 느낌이 들게 하였다. 이는 연이어진 가까운 산봉우리를 피마준(披麻戴)에 태점(點)으로 부드럽게 표현한 것에 골기(骨氣)로 조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미호 渼湖>

조선시대에는 한강 곳곳의 강폭이 넓은 지역은 '호'자를 붙여 '동호(東湖)', '서호(西湖)', '행호(李湖)'라고 불렀다. '미호(渼湖)'는 미음(渼陰,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앞 한강의 별칭이다. 이곳에는 1663년에 사액(賜額)된 석실서원(石室書院)이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결사반대한 청음 김상헌(消陰 金尙憲,1570-1652) 등의 위패가 봉안된 곳이다. 이 그림의 왼쪽 언덕 위에 석실서원과 서원마을이 그려져 있다. 전경을 연초록빛으로 칠하여 초봄의 새뜻한 맛을 강조하였으며, 겸재 그림에서 드물게 표현되는 전답(田畓)이 그림 오른쪽 뒤편에 길게 펼쳐져 있다.
<송파진 松坡津>

송파진(松坡津)은 현재 서울 송파구 신천동 일대에 있던 나루터다. 병자호란으로 광주부(廣州府)가 남한산성으로 옮겨진 이후 송파나루는 서울과 광주를 잇는 가장 큰 나루였다. 1970년에 송파나루 앞으로 흐르던 한강 본줄기를 매립해 지금의 석촌호수가 만들어지고 송파나루는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그림 중앙에 보이는 여러 채의 큰 기와집은 송파진(松坡鎭)의 진사(鎭舍) 건물과 송파창(松坂倉)으로 추정된다. 송파진은 조선시대 진관체제 하에 경기도 지역을 담당하는 5개의 진 가운데 하나였다. 송파나루에는 진선(津船) 9척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큰 규모의 나루였음을 알 수 있다. 강 양안에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와 강 한복판에 떠가는 돛단배 한 척으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주변의 초가집들은 조선 10대 시장 중 하나인 송파시장의 270여 호(戶)에 달했던 객주집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청기와 지붕은 삼전도에 건립된 대청황제공덕비(大清皇帝功德碑,1639년)의 비각이며, 그 뒤 먼 산에 남한산성이 웅장하게 표현되어 있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산 표면에는 연초록빛, 짙은 녹색을 많이 쓰고 등성이는 군청색으로 밝게 우려서 신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압구정 狎鷗亭>

<압구정>은 현대아파트, 한양아파트 등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의 옛 모습이다.
이 그림에는 강변을 따라 높은 언덕이 줄지어 있고, 주변으로 기와집, 초가집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가장 끝 언덕 위 높이 지어진 큰 기와집이 압구정으로 권신(權臣) 한명회(韓明澮, 1415-1487)가 건립한 정자이다. 압구정 앞 강 건너는 중종(1506-1544) 때부터 독서당(讀書堂: 젊고 총명한 관리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하게 하던 집)을 두었던 두무개이고, 그 뒤로 짙은 녹색으로 그린 산이 남산이다. 남산의 정상에는 큰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한국전쟁 때까지도 이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압구정 주변의 산언덕은 연둣빛으로 칠하고 초록으로 덧칠해 높은 언덕의 그늘을 표현하고, 먼 산들은 군청색을 열게 칠해 서울 주변의 산들을 그윽하게 그렸다. 다만 남산은 멀리 있지만 짙푸른 소나무 숲을 강조하기 위해 짙은 녹색으로 그려 다른 산들과 구별되게 했다.
<개화사 開花寺>

<개화사)는 현재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 있는 개화산 약사사의 겸재 당시 모습으로, 이때는 주룡산(駐龍山) 개화사(開花寺)라 했다. 개화산은 행주산성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산으로, 삼각산과 도봉산, 한강과 임진강이 마주치는 광활한 풍광을 아울러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작품은 <경교명승첩>의 그림들과 다르게 종이에 수묵으로만 담담하게 강변의 주룡산과 개화사를 그려내었는데, 담묵의 부드러운 피마준(披麻皺)으로 산세를 표현하고 태점(點)을 성글게 찍어나간 다음 그 위에 수묵으로 열게 훈염(暈染)하여 온 산을 회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주룡산 높고 깊은 곳에 그린 기와집이 개화사이며, 한강을 따라 서해안 각처로부터 물화를 싣고 끊임없이 오가는 모습은 쌍돛을 단 배로 짐작할 만하다.
겸재 의 漢陽.漢江-14京郊名勝帖-木覓朝暾. 鞍峴夕烽. 楊花喚渡. 錦城平沙. 小岳候月. 宗海聽潮
'새벽 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시 배에 가린다.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르리라.(曙色浮江漢,觚稜際釣參,朝朝轉危坐,初日上終南)'겸재가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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