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山大師 禪詩
<상추(賞秋)-가을노래>
遠近秋光一樣奇(원근추광일양기)
閑行長嘯夕陽時(한행장소석양시)
滿山紅綠皆精彩(만산홍록개정채)
流水啼禽亦說詩(유수제금역설시)
가을의 풍광 멀리나 가까이나 하나같이 기이한데
석양에 휘파람 불며 한가롭게 갈어가네
온 산의 붉고 푸름 모두 아름다운 빛깔이요
흐르는 물, 새들의 울음소리 또한 시를 말 하네.
*서산대사는 한국 선시(禪詩)를 완성한 뛰어난 시인으로, 허균을 비롯한 대가들이 한결같이 그의 시를 찬양하였다. 조선 한시의 비평에 있어 가장 엄정하고 공평한 시평을 한 홍만종(洪滿宗; 1643~1725)은 그의 저서 <소화시평>에서 서산대사의 ‘상추(賞秋, 가을의 노래)’를 소개하면서 “뜻이 오묘하고 호젓한 정취를 나타내고 있다. 스님이 재주가 많다는 말이 어찌 참말이 아니겠는가?”하였다.
서산대사가 조선후기 선시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의 직제자들을 비롯한 선사들의 시문집이 78종에 이른다. 그들은 서산대사의 선시의 맥을 이어 선수행(禪修行)에서 얻은 깨달음의 경지를 시 속에 담아낸 시승(詩僧)들이다. 그의 선시는 초의(草衣)선사, 만해(卍海)선사에게 까지도 영향을 주었다.
-김형중(명성여고 교법사·문학박사)
대사는 천재 시인이었다. 열 살 때 안주목사 이시중으로 부터 ‘비낄 사(斜)’와 ‘꽃 화(花)’자 운을 받아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을 정도다.
香凝高閣日初斜(향응고각일초사)
千里江山雪若花(천리강산설약화)”
향기 어린 높은 누각에 해가 기울기 시작하니
천리 강산에 눈이 꽃과 같구나
그리고 출가하기 전, 절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갑자기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고 선정(禪定)에서 깨어나 말이나 문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진리의 세계를 깨달았다. 얽매어서 답답하던 마음이 확 트이고 환희심이 솟아났다. 이때 심경을 시로 읊었다.
忽聞杜宇啼窓外(홀문두우제창외)
滿眼春山盡故鄕(만안춘산진고향)
문득 창 밖의 두견새 울음소리 들으니.
눈에 비치는 모든 봄의 산이 내 고향이로구나.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냇가에서 물을 길러 지게에 지고 절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 구름에 쌓인 산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그 깨달음의 심정을 읊었다.
汲水歸來忽回首(급수귀래홀회수)
靑山無數白雲中(청산무수백운중)
물을 길어 절로 돌아오다 문득 머리를 돌리니
푸른 산이 흰 구름 속에 있네.
다음은 서산대사의 출가시 화개동(花開洞)과 오도시, 도통시 그리고 임종게이다.
<화개동 출가시(花開洞 出家詩)>
花開洞裏花猶落(화개동리화유락)
靑鶴巢邊鶴不還(청학소변학불환)
珍重紅流橋下水(진중호류교하수)
汝歸滄海我歸山(여귀창해아귀산)
꽃피는 화개동엔 오히려 꽃이 지고
청학의 둥우리에는 아직 학은 아니 돌아오네.
잘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아
너는 바다로 돌아가고 나는 산으로 돌아가련다.
<오도시(悟道詩)>
髮白非心白(백발비심백)
古人曾漏洩(고인증누설)
今聽一聲鷄(금청일성계)
丈夫能事畢(장부능사필)
머리털은 희었으나 마음은 희지 않았다고
옛 스승님은 일찍이 말씀하셨네.
문득 닭 울음소리를 듣고
대장부의 할 일을 모두 마쳤네.
<도통시(道通詩)>
忽得自家底(홀득자가지)
頭頭只此爾(두두지차이)
萬千金寶藏(만천금보장)
元是一空紙(원시일공지)
문득 깨달음을 얻어 내 집에 이르니
온 세상의 사물들이 그대로 진리의 세계로다.
깨달은 자에게는 팔만대장경도
원래는 하나의 빈 종이로구나.
<임종게(臨終偈)>
千思萬思量(천사만사량)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泥牛水上行(니우수상생)
大地虛空裂(대지허공렬)
천 생각 만 가지 헤아림이
붉은 화로에 한 점의 눈이로다.
진흙소가 물 위를 가나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구나.
한편 대사가 제자에게 보낸 시가 <청허당집>에 한 수 있다. 처영스님은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킨 서산대사의 큰 제자이다. 처영스님이 대사의 문하에서 공부를 마치고 본산(本山)으로 돌아 갈 때 대사가 그를 전송하면서 지은 시다.
衲白雲無色(납백운무색)
潭淸鶴有雙(담청학유쌍)
從師出山去(종사출산거)
片月照空窓(편월조공창)
누더기는 희어서 구름이 무색하고
연못은 맑아서 학이 비춰서 한 쌍이 되었구나.
그대가 이 산을 나가면
조각달만 빈 창을 비추겠구나.
이 밖에 수많은 주옥같은 시중
<증별인수선자(贈別麟壽禪子)>
金剛道士促裝歸(금강도사촉장귀)
風滿懷中雲滿衣(풍만회중운만의)
啼鳥落花春寂寂(제조낙화춘적적)
夕陽山郭雨霏霏(석양산곽우비비)
금강산 도인이 행장 꾸려 떠나는데
가슴 가득 맑은 바람 옷에는 구름.
새 울고 꽃 지니 봄은 고요하고
저녁노을 산기슭에 가랑비 뿌리네.
一聲長笛離亭苦(일성장적이정고)
千里孤帆海色微(천리고범해색미)
今日故人何處宿(금일고인하처숙)
半窓梅竹月依依(반창매죽월의의)
한 곡조 피리소리 떠나는 정자 슬프고
천리 길 외로운 배 바닷빛 희미하네.
오늘 밤 자네가 쉴 곳이 어디뇨
매화 향기 대 그늘에 달 그림자 내리는 곳.
<이름(名)>
有名難避世 (유명난피세)
無處可安心 (무처가안심)
飛錫又飛錫 (비석우비석)
入山恐不深 (입산공불심)
이름나면 세상 피함 어려워져서
마음 편히 지낼 만한 곳이 없다네.
석장(錫杖)을 날리면서 가고 또 가도
산에 듦이 깊잖을까 염려한다네.
*(錫杖) : 승려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뜻함.
*청허 휴정(淸虛 休靜,1520~1604)西山大師
조선 중기의 고승, 승장(僧將)이다. 명종대 승과에 합격하여 선교양종판사에 제수되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승병을 일으켜 승병장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조선후기 불교교단 최대 계파인 청허계(淸虛系) 법맥의 시원이다.
속성은 최(崔), 본관은 완산, 이름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서산(西山), 별호는 백화도인(白華道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이다. 휴정은 법명.
청허 휴정(淸虛 休靜)선사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선사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승군장(僧軍將) 속가 이름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이 휴정이다. 별호는 백화도인(白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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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붓글씨로 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고 애송하면서 유명해진 이 시는 흔히 서산대사의 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시는 조선 후기 시인 이양연의 시라고 한다.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정조, 순조 연간의 문신으로 본관이 전주이고 광평대군의 후손이기도 하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덮인 들판을 건너갈 때에는
아무쪼록 발걸음을 조심할지어다.
오늘 내 발자취가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