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坡-蘇軾
東坡(동파)-蘇軾(소식)
雨洗東坡月色清(우세동파월색청),
市人行盡野人行(시인행진야인행)。
莫嫌犖確坡頭路(막혐락확파두로),
自愛鏗然曳杖聲(자애갱연예장성)。
비가 동파(東坡)를 씻어내니 달빛이 맑고
사람들 다 지나가면 농부가 지나간다.
언덕길 울퉁불퉁하다 싫어하지 마라,
지팡이 끄는 따각따각 소리 내 좋아한다네.

<원문출처>
東坡/作者:蘇軾 北宋
本作品收錄於:《東坡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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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坡(동파) : 황주(黃州) 동문(東門) 밖에 있는 언덕으로 소식이 손수 개간한 농지를 말한다. 소식은 이곳을 동파라고 이름 지었고 애정을 느껴 자신의 호를 동파라 지었다.
○ 市人(시인) : 일반 사람들.
○ 野人(야인) : 동파 자신을 말한다.
○ 犖確(낙확) : 바위가 많고 험하다. 바위가 삐죽삐죽 솟아 있는 것을 가리킨다.
○ 鏗然(갱연) :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쇠붙이나 돌 따위의 단단한 물체가 부딪치는 소리나 거문고 따위를 타는 소리가) 짜랑짜랑하게 맑고 곱다. 鏗(금옥소리 ‘갱’)은 의성어.
*이 시는 신종(神宗) 원풍(元豊) 6년(1083)에 동파(東坡)의 밤에 홀로 지팡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묘사한 시이다. 소식은 황주로 유배된 후 원풍4년(1081)에 같은 제목인 ‘동파 8수’의 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내가 황주(黃州)에 온지 2년이 되어 궁핍한 나날을 보냈다. 친구 마정경(馬正卿)이 내가 굶는 것을 애처롭게 여겨 군(郡)에 부탁하여 묵은 땅 수십 마지기를 얻어주어 개간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땅을 오래도록 버려두어서 가시덤불이 우거진 자갈밭이 되어 있었고, 날씨마저 몹시 가물어 개간하기가 너무 힘이 들어 근력이 소진하고 말았다. 쟁기를 놓아두고 탄식하다가 이 시를 지어 이렇게 고생하는 처지를 스스로 불쌍히 여겨, 부디 내년에 수확이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 수고로움을 잊고자 한다. ”<余至黃州二年,日以困匱,故人馬正卿哀余乏食,為於郡中請故營地數十畝,使得躬耕其中。地既久荒為茨棘瓦礫之場,而歲又大旱,墾辟之勞,筋力殆盡。釋耒而嘆,乃作是詩,自湣其勤,庶幾來歲之入以忘其勞焉。>
소식은 원풍(元豊) 4년(1081)부터 이 땅을 개간한 후 동파(東坡)라 이름 짓고 자신을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불렀다. 동파(東坡)라는 그의 호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식(蘇軾, 1037~1101)은 중국 북송 시대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스스로 동파거사라고 칭했고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쓰촨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동파는 송시 성격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문장가였고 중국문학사상
처음으로 호방사(豪放詞)를 개척한 호방파 대표 사인(詞人)이었다. 그는 또 북송사대가로 손꼽히는 유명 서예가이기도 했고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 주요 구성원으로서 중국 문인화풍을 확립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이자 못 하는 것이 없었던 팔방미인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국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