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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陣子.爲陳同甫賦壯詞以寄之-辛弃疾

시뜨락 시정(詩庭) 2025. 1. 26. 05:15

파진자(破陣子):
위진동보부장사이기지
(爲陳同甫賦壯詞以寄之)
- 신기질(辛弃疾)-

醉里挑燈看劍(취리도등간검)
夢回吹角連營(몽회취각련영)
취중엔 등불을 돋우어 보검을 보고,
꿈에 깨어선 병영의 연달아 들리는 호각 소리

八百里分麾下炙 (팔백리분휘하자)
五十弦翻塞外聲 (오십현번새외성)
沙場秋點兵   (사장추점병)
쇠고기(八百里)를 나누어 휘하 장병들 구워먹이고,
오십 명의 칠현금으로 웅장하게 군가(塞外聲)를 연주하며.
싸움터(沙場)에서는 추상같이 군사를 점검하네.

馬作的盧飛快(마작적로비쾌)
弓如霹靂弦驚(궁여벽력현경)
말은 유비가 탔던 적로(的盧)마처럼 쏜살같이 달리고,
활은 벽력같이 시위를 울린다.

了卻君王天下事(료각군왕천하사)
贏得生前身後名(영득생전신후명)
군왕의 천하대사를 완성하여(중원 수복)
대대로 전해지는 명예를 얻고자 하였는데...

可憐白發生(가련백발생)
안타깝게도  이미 백발의 늙은이가  되었구나.


*신기질(辛棄疾, 1140년~1207년)은 중국 남송의 애국적인 사인이다.
자는 단부(坦夫), 유안(幼安). 가헌거사(稼軒居士)라고 호칭했다. 한족으로 산동(山東)지방인 역성(歷城:제남)출생. 그가 출생하였을 때에는 이미 화북지역은 여진족들에게 유린당하고 정강의 변으로 인한 남천으로 인하여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였다. 훗날 대리소경(大理小卿), 병부시랑(兵部侍郞) 등을 지냈으며 은퇴 후 남송 영종의 치세인 개희 3년(1207년)에 향년 68세로 죽었다, 현존하는 사가 약 600여수의 작품이 전해진다.
이 사는 신기질이 실의하여 신주(信州-지금 강서성 상요시(上饶))에서 한가롭게 지낼  때 지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훗날 신기질이 《하신랑-파주장정설(賀新郎·把酒長亭說》 사(詞)를 지어 진동보에게 부쳤는데, 그가 한 수를 화답하였고 이후에 또 같은 사패로  반복적으로 화창하였다. 이 《파진자(破陳子)》도 대략 이 시기에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