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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 憤-放翁 陸游

시뜨락 시정(詩庭) 2025. 1. 26. 03:34

서 분 (書 憤)-放翁 陸游(방옹 육유).    
<분憤한 마음을 적다>

早歲那知世事艱 (조세나지세사간)
젊었을 때는 어찌 세상일이 어려운 줄 알았을까.
中原北望氣如山 (중원북망기여산)
북쪽 땅 중원中原을 바라보면 기운이 산처럼 솟았네.
樓船夜雪瓜洲渡 (루선야설과주도)
눈 내리던 밤에 군선軍船을 타고 과주瓜洲를 건넜고
鐵馬秋風大散關 (철마추풍대산관)
가을바람 맞으며 철갑을 두른 말을 타고 대산관 을 내달렸네.
塞上長城空自許 (새상장성공자허)
변방을 지키는 만리장성이 되자던 스스로의 다짐은 부질없는 일이 되었고
鏡中衰鬢已先斑 (경중쇠빈이선반)
거울 속 성글어진 귀밑털은 벌써 희끗희끗해졌네.
出師一表眞名世 (출사일표진명세)
제갈공명明의「출사표」는 참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으니
千載誰堪伯仲間 (천재수감백중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누가 우열優劣을 가릴 수 있겠는가.

<육유의 석각상(陸游石刻像]), 육유는 자가 무관이고 호는 방웅 이며, 산음(지금의 절강성 소흥) 사람이다. 그는 여든여섯 해를 살았다. 후 대에 전해오는 시가가 만 수에 달해 수량으로 보면 송대 시인들 중에서 최 고이다.

*放翁 陸游(방옹 육유).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자는 무관(務觀). 1162년에 진사(進士)가 되어 1172년 사천(四川)에 부임, 1175년 범성대(笵成大)가 사천 제치사(制置使)로 부임해 와서부터 그의 지우(知遇)를 받아서 참의관(參議官)이 되었으나, 문학자로서 교제하여 예법에 구애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퇴방(頹放)함을 나무랐으나, 스스로 방옹(放翁)이라 호를 붙였다. 1178년 서울로 소환되어 보장각시제(寶章閣侍制)가 되어 위남백(渭南伯)에 책봉되었다.
그는 송조(宋朝)의 남천(南遷) 때 출생하여 나라의 비운을 목격하고 항상 복수의 상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시(詩)․사(詞)에도 애국의 정이 토로되어 애국시인이란 평을 받고 있었으나, 중년 이후는 스스로 기축(機軸)을 내고 만년에는 평담한 경지에 이르렀다. 송(宋) 일대에서도 소식(蘇軾)과 병칭되는 시의 대가(大家)이며, 작품도 매우 많다. 또 기행(紀行)이나 역사에도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시집】<방옹시집(放翁詩集)>
【문집】<위남문집(渭南文集)>
【저서】<검남시고(劍南詩稿)>(85권)
【전집】<육방옹전집(陸放翁全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