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石-韓愈
山石(산석) - 한유(韓愈)

<산의 바위>
山石犖确行徑微 (산석낙학행경미)
黃昏到寺蝙蝠飛 (황혼도사편복비)
升堂坐階新雨足 (승당좌계신우족)
芭蕉葉大梔子肥 (파초엽대치자비)
僧言古壁佛畵好 (승언고벽불화호)
以火來照所見稀 (이화래조소견희)
鋪床拂席置羹飯 (포상불석치갱반)
疏糲亦足飽我飢 (소려역족포아기)
夜深靜臥百蟲絶 (야심정와백충절)
淸月出嶺光入扉 (청월출령광입비)
天明獨去無道路 (천명독거무도로)
出入高下窮烟霏 (출입고하궁연비)
出紅澗碧紛爛漫 (출홍간벽분난만)
時見松櫪皆十圍 (시견송력개십위)
當流赤足踏澗石 (당류적족답간석)
水聲激激風吹衣 (수성격격풍취의)
人生如此自可樂 (인생여차자가락)
豈必局促爲人鞿 (기필국촉위인기)
嗟哉吾黨二三子 (차재오당이삼자)
安得至老不更歸 (안득지로불갱귀)
<산 석〉-한유
산의 바위는 험준하고 가는 길 좁은데
황혼에 절에 이르니 박쥐들이 날아다니네
법당에 올라 섬돌에 앉으니 방금 내린 비 넉넉하여
파초 잎은 커지고 치자는 두터워졌네
스님이 오래된 벽의 불화(佛畫)가 좋다고 말하기에
등불 들고 와 비춰보니 보기 드문 그림이라
자리 펴고 상 놓고 국과 밥을 차렸는데
거친 밥이지만 나의 시장기 채우기 족하다
밤 깊어 조용히 자리에 드니 벌레소리 끊기고
청명한 달은 고개 위로 솟아 사립문에 비춰든다
날이 밝자 혼자 떠나니 길은 따로 없어
높고 낮은 언덕길 오르내리며 구름과 안개 헤쳐 나간다
붉은 산 푸른 시내 현란한 색깔인데
여기저기 보이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열 아름이나 되네
시내를 만나면 맨발로 징검다리 밟고 건너니
물소리는 콸콸나고 바람에 옷자락 날린다.
인생이 이만하면 즐길 만하니
어찌 반드시 구속되어 남에게 얽매일까
애닯구나 동행하는 우리 친구들이여
어찌하여 다 늙도록 돌아가지 못하는가
[通釋] 산의 바위는 험준하여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모습이고 산길 역시 매우 좁은데, 황혼무렵 절에 다다르니 박쥐들이 날아다닌다. 법당에 올라 섬돌에 앉아있으려니 방금 전 흠뻑 비가 내려 파초 잎도 커지고 치자 꽃도 무성해졌다. 절의 스님이 오래된 벽의 불화(佛畫)가 좋다고 하기에 등불을 들고 와서 비춰보니 과연 세상에서 보기 드문 그림이다. 상을 펴고 앉을 자리를 턴 다음 스님이 국과 밥을 차려 내오는데, 거친 밥이지만 주려있는 나의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밤이 깊어지자 침상에 조용히 누웠는데 이때 모든 벌레는 울음소리를 멈추었고, 청명한 달이 고개 너머로 떠올라 그 빛이 사립문에 비춰든다. 이른 아침 홀로 떠남에 길은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분간하기 어렵고, 굽이굽이 들어갔다 나왔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구름 안개 낀 산길을 두루 다닌다. 산은 붉고 시내는 푸른데 햇볕이 사방에서 내리쬐어 그 빛깔은 더욱 현란하다. 때때로 보이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는 그 크기가 열 아름이나 될 만큼 장대하다. 흐르는 물속에 발을 담근 채 물 속의 돌들을 밟는데, 콸콸 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미풍이 불어와 옷깃을 날린다. 인생이 이만하다면 즐길만하니 굳이 구속되어 다른 이의 굴레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여. 어째서 늙어서까지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가.
[解題] 이는 貞元 17년(801) 한유(韓愈)가 서주(徐州)에서 낙양(洛陽)으로 오는 도중 혜림사(惠林寺)라는 절을 둘러보고 쓴 시이다. 그는 해질녘에 절에 도착하여 밤에 유숙하고 날이 밝자 홀로 다시 여정을 떠나면서 목격한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묘사하였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평소 지니고 있던 한적한 생활에 대한 동경과 벼슬살이에 대한 불평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 시의 제목인 〈山石〉은 시구 가운데 몇 자를 취하여 제목으로 삼는 방식을 따른 것이다. 시의 내용은 주로 山寺를 유람하는 정경을 묘사한 것이지만, 그 가운데 내포된 主旨는 ‘人生如此自可樂 豈必局束爲人鞿’라는 시구 속에 담겨 있다.
시 전체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의 네 구는 초여름 황혼 무렵에 한차례 비가 지나간 후, 그림처럼 펼쳐진 절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중간의 여섯 구는 밤에 절에서 留宿하며 경험한 초여름 밤의 청명한 情景을 묘사하였다. 마지막 열 구는 절을 나온 후 주변의 自然景色을 묘사하였는데, 강렬한 색채 대비 등을 통해 그 묘미를 더하기도 하였다. 흐르는 물에서 발을 담그고서 自然을 몸소 느끼는 가운데, 인생의 樂을 찾는다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역주]
역주1> 犖确(낙학) : 산의 바위들이 험준하고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못한 모양이다.
역주2> 火 : 여기서는 등불[燈火]을 가리킨다.
역주3> 稀(희) : ‘稀少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佛畫가 매우 훌륭하여 보기 드물다는 의미가 된다. 한편 ‘모호하다’ 혹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라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역주4> 百蟲絶(백충절) : 벌레 울음소리가 모두 멈추었다는 뜻이다.
역주5> 無道路(무도로) : 이른 아침에 낀 안개로 인해 길을 분간할 수 없음을 이른다.
역주6> 窮煙霏(궁연비) : 운무(雲霧)가 자욱한 산길을 두루 다녔다는 의미이다.
역주7> 爛漫(난만) : 햇볕이 사방에서 내려쬐어 색채가 현란한 모습이다.
역주8> 生 : ‘吹(취)’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9> 局束(국속) : 구속받는다는 뜻이다. ‘局促’이라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10> 鞿(기) : 본래는 말에 메는 굴레 혹은 재갈인데, 여기서는 ‘얽매인다’는 뜻이다.
역주11> 吾黨二三子(오당이삼자) : 자신과 지취(志趣)가 서로 들어맞는 친구들이다. 《韓昌黎集外集》 〈洛北惠林寺題名〉에, “韓愈, 李景興, 侯喜, 尉遲汾이 貞元 17年 7月 22日 溫落에서 고기를 잡고 이곳에서 묵다가 돌아갔다.”라 하였고, 〈贈侯喜〉에 ‘晡時堅坐到黃昏’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黃昏到寺蝙蝠飛’라는 구절과 같은 景物이므로 시에서 지칭하는 二三子는 바로 이경흥과 후희, 위지분 등임을 알 수 있다.

*한유(韓愈, 대력 3년(768년)~장경 4년(824년))는, 중국 당(唐)을 대표하는 문장가 · 정치가 · 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