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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韓愈)의 사설(師說)

시뜨락 시정(詩庭) 2024. 12. 19. 23:57

한유(韓愈)의 사설(師說)
<사설>은 ‘스승에 대한 해설’이다. 한유는 당대(唐代)에 이르러 사람들이 서로 스승삼고 제자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풍조에 개탄하며, 인간은 노소(老少)와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도(道)가 있는 이를 스승삼아 옛 성인의 도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師說]
古之學者(고지학자)는 :
옛날 배우는 자들은
必有師(필유사)니 :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師者(사자)는 :
스승이란
所以傳道授業解惑也(소이전도수업해혹야)라 :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다.
人非生而知之者(인비생이지지자)면 :
사람이 생이지지한 자가 아니면
孰能無惑(숙능무혹)이리오 :
그 누가 능히 의혹이 없겠는가.
惑而不從師(혹이불종사)면 :
의혹이 있으면서 스승을 따라 배우지 않는다면
其爲惑也(기위혹야) :
그 의혹은
終不解矣(종불해의)리라 :
끝내 풀리지 않을 것이다.
生乎吾前(생호오전)하여 :
나보다 앞에 태어나서
其聞道也(기문도야) :
도를 들음이
固先乎吾(고선호오)면 :
진실로 나보다 먼저라면
吾從而師之(오종이사지)하고 :
내 따라서 그를 스승으로 삼을 것이요,
生乎吾後(생호오후)라도 :
나보다 뒤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其聞道也(기문도야) :
도를 들음이
亦先乎吾(역선호오)면 :
또한 나보다 먼저라면
吾從而師之(오종이사지)라 :
내 따라서 그를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吾師道也(오사도야)니 :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으니,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부용지기년지선후생어오호)리오 :
그 나이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뒤에 태어남을 어찌 따지겠는가.

是故(시고)로 :
이렇기 때문에
無貴無賤(무귀무천)하며 :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으며,
無長無少(무장무소)요 :
나이의 장소(많고 적음)도 없고
道之所存(도지소존)은 :
도가 있는 곳은
師之所存也(사지소존야)니라 :
스승이 있는 곳이다.

嗟乎(차호)라 :
아! 슬프다.
師道之不傳也 久矣(사도지불전야 구의)니 :
사도가 전해지지 못한지 오래되었으니
欲人之無惑也나 難矣(욕인지무혹야 난의)라 :
사람들이 의혹함이 없게 하고자 하나 어려운 것이다.

古之聖人(고지성인)은 :
옛날에 성인은
其出人也遠矣(기출인야원의)로되 :
보통사람보다 뛰어남이 월등하였으나
猶且從師而問焉(유차종사이문언)이어늘 :
오히려 스승을 좇아 물었는데,
今之衆人(금지중인)은 :
지금의 중인들은
其下聖人也 亦遠矣(기하성인지역원의)로되 :
성인보다 낮음이 또한 월등하나
而恥學於師(이치학어사)라 :
스승에서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

是故(시고)로 :
이 때문에
聖益聖(성익성)하고 :
성인은 더욱 성스러워지고
愚益愚(우익우)하니 :
어리석은 사람은 더욱 어리석어지니,
聖人之所以爲聖(성인지소이위성)과 :
성인이 성인 되신 이유와
愚人之所以爲愚(우인지소이위우)가 :
우인이 우인이 된 이유는
其皆出於此乎(기개출어차호)인저 :
그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愛其子(애기자)하여는 :
그 자식을 사랑함에는
擇師而敎之(택사이교지)로되 :
스승을 가려 가르치되,
於其身也(어기신야)엔 :
자기 자신에 있어서는
則恥師焉(즉치사언)하니 :
스승삼기를 부끄러워하니
惑矣(혹의)로다 :
이는 미혹된 것이다.
彼童子之師(피동자지사)는 :
저 동자의 스승은
授之書而習其句讀者也(수지서이습기구두자야)니 :
책을 주어서 구두를 익히게 하는 자이니,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비오소위전기도해기혹자야)라 :
내가 말하는 도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준다는 자는 아니다.
句讀之不知(구두지불지)와 :
구두를 알지 못함과
惑之不解(혹지불해)에 :
의혹을 풀지 못함에
或師焉(혹사언)하고 :
혹은 스승삼고
或不焉(혹불언)하여 :
혹은 스승삼지 아니하여
小學而大遺(소학이대유)하니 :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니,
吾未見其明也(오미견기명야)로라 :
나는 그 현명함를 보지 못하겠다.

巫醫樂師百工之人(무의락사백공지인)은 :
무당과 의원, 악사와 백공의 사람들은
不恥相師(불치상사)어늘 :
서로 스승삼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데,
士大夫之族(사대부지족)은 :
사대부의 집안들은
官盛則近諛(관성즉근유)라하나니 :
벼슬이 높은데 스승삼으면 아첨에 가깝다.”하니,
鳴乎(명호)라 :
아! 슬프다.
師道之不復(사도지부복)을 :
사도를 회복하지 못함을
可知矣(가지의)로다 :
알 수 있겠다.

巫醫百工之人(무의백공지인)은 :
무당과 의원, 악사와 백공의 사람들은
君子不齒(군자불치)로되 :
군자들이 끼워주지 않으나
今其智乃反不能及(금기지내반불능급)하니 :
지혜가 마침내 도리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니
可怪也歟(가괴야여)인저 :
괴이한 일이다.
聖人은 無常師(성인 무상사)라 :
성인은 일정한 스승이 없다.
孔子師郯子萇弘師襄老聃(공자사담자장홍사양노담)하시니 :
공자께서는 담자, 주나라의 대부 장홍, 노나라의 악관 사양, 도가의 시조 노자을 스승 삼의셨으니,
郯子之徒(담자지도)는 :
담자의 무리는
其賢(기현)이 :
그 어짊이
不及孔子(불급공자)라 :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孔子曰三人行(공자왈삼인행)에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사람이 동행하면
則必有我師(즉필유아사)라하시니 :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하셨으니

是故(시고)로 :
이러므로
弟子不必不如師(제자불필불여사)요 :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요,
師不必賢於弟子(사불필현어제자)라 :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나은 것이 아니다.
聞道有先後(문도유선후)하고 :
도를 들음에 선후가 있고,
術業有專攻(술업유전공)이니 :
술업에 전공이 있어서이니
如是而已(여시이이)라 :
이와 같을 뿐이다.

李氏子蟠(이씨자반)이 :
이씨의 아들 반이
年十七(년십칠)에 :
나이 겨우 열 일곱에
好古文(호고문)하여 :
고문을 좋아하여,
六藝經傳(육예경전)을 :
육예의 경전을
皆通習之(개통습지)러니 :
모두 통달하여 익혔는데
不拘於是(불구어시)하고 :
시에 구애되지 않고
請學於余(청학어여)어늘 :
나에게 배우기를 청하였으므로,
余嘉其能行古道(여가기능행고도)하여 :
나는 그가 능히 고도를 행함을 가상히 여겨
作師說以貽之(작사설이이지)하노라 :
사설을 지어 주는 것이다.

*한유(768년~824년)는 자가 퇴지(退之)이며 남양(南陽-지금의 河南省 孟縣)사람이다. 조상이 창려(昌黎-지금 河北省 徐水縣)에 살았기 때문에 한유 스스로 창려한유(昌黎韓愈)라고 칭한다. 또한 후인들은 그를 한창려(韓昌黎)라고 한다.
한유는 3세에 부모를 잃고 형수 정씨(鄭氏)의 보살핌으로 성장한다. 어려서부터 각고의 노력을 하여 육경(六經)과 백가서(百家書)에 정통한다. 25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29세에 관리생활을 시작하며 관직이 이부시랑(吏部侍郞)에 까지 이른다.
한유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변려문(騈儷文)을 반대하고 고문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고문운동은 단순한 문체개혁운동이 아닌 사상개혁운동이다. 그는 진한(秦漢)이전의 문장으로 돌아가야 하며, 반드시 문장에는 유가(儒家)의 도가 실려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맹자이래로 단절되었던 유학의 도통(道統)을 계승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자부하며 고문운동을 전개한다.
한유의 문장을 보면, 그 문장표현에 있어서 개성적인 표현을 추구하고, 내용이 구체적이다. 또한 유가의 도를 선양한 것, 이치를 표현한 것, 옛 역사에 대한 견해를 쓴 것, 문학에 대한 주장, 서정적이면서 서사적인 글 등 문장의 내용이 다양하여 고문의 교본이 될 정도이다. 그는 시를 짓는데 있어서도 산문구법을 채용하며, 낡고 평범한 말을 피하고 독특하고 빼어난 표현만을 추구하고, 의식적으로 괴이하고 어색한 표현을 사용하여 험괴(險怪)한 풍격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