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朝.五胡十六國.魏晉南北朝
*육조 시대(六朝時代, 229년 ~ 589년)는 중국 삼국 시대의 오나라, 동진 및 남조의 유송, 남제, 양나라와 진나라가 존속했던 기간을 모두 합한 시대이다. 모두 현재의 난징시를 수도로 하였다. 난징은 당시엔 건업(建業), 건강(建康)이라고 불렸다. 양쯔강 하류의 양저우(揚州)를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로 삼았으며, 중류의 징저우(荊州)를 군사상의 요지로 삼아 북조의 정권에 대항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위진 남북조 시대와 거의 같은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는데 원래 귀족문화인 궁중문학, 서도(書道)와 회화(繪畵) 등이 국가들을 달리하면서도 통일성을 지녔기 때문에 문화사적 시대 구분에 쓰인다.
한나라 시절에는 강남 일대에는 한나라의 형식적인 통치권 자체는 미쳤으나 미개발지역이 많았고 이민족들이 할거하여 발전이 더디었다. 그러나 육조 시대를 거치면서 산월족 등 강남 일대의 이민족이 한족에 의해 토벌되고 개발이 본격화됨으로써 중국 경제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차 차지해나가게 되었다. 이후 강남이 화북의 경제력을 압도하게 되고 중국 경제의 중심부로 기능하게 되었다.
*五胡十六國時代 / Sixteen Kingdoms

중국의 역사 시대 중 하나로 크게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속한다. 오호십육국이라고 불리는 시대는 팔왕의난 초기, 5부部 흉노의 맹주 유연이 한왕漢이라고 칭한 서진 건무 원년(304)부터 439년 북위의 세조 태무제의 화북 통일까지 135~136년 동안을 말한다. (수나라 통일 이전)
5호는 흉노, 선비, 갈, 강, 저 등의 다섯 이상의 오랑캐[2]들을 뜻하고 16국은 이들과 한족을 포함해서 화북 지방에 세운 수많은 나라들 중 주요 16국을 뜻한다. 16국 중 전량, 서량, 북연은 한족 왕조에 속하며 나머지 13국이 이들 다섯 이민족이 세운 국가다.
흔히 착각을 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16국'은 화북 지방, 다시 말해 '북조'의 수많은 국가들을 묶은 것이고 이 시기 강남 지방, 다시 말해 '남조'는 한족 왕조인 동진이 있었다. 삼국시대를 끝내고 천하통일을 했으나 급속히 무너진 서진이 화북에서 세를 잃고 강남 지방으로 내려간 사이, 다른 민족들과 한족들이 화북에서 세운 나라들을 칭하는 명칭이 바로 오호 십육국이다.
사실 '16국'은 이 가운데서도 어느 만큼 지속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상대적으로 큰 나라만 넣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세운 나라는 16개국을 훨씬 넘는데, 선비족의 대(代)나라와 나중에 이를 부흥시켜 이어진 북위(北魏)는 16국에 안 넣고, 십육국에 안 끼워넣는 단명한 왕조도 아주 많다.
오호십육국시대의 시작은 보통 유연(劉淵)이 뒷날 전조(前趙)로 바뀌는 한(漢)을 건국한 304년,[3] 끝은 북위(北魏)가 화북을 통일하는 439년으로 본다. 북위의 화북 통일로 난세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오호십육국시대 만큼의 단명 왕조가 넘쳐나는 개막장까지는 아니었고 북위도 150년 정도는 지속되었다. 북위의 화북 통일 이후는 남북조시대로 따로 분류하는 편. 완전한 중국 통일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수나라가 이룩한다.
이 시기 중원(화북)은 말 그대로 난세였고, 한때 전진(前秦)이 화북을 통일도 했으나 비수대전의 패배로 다시 혼란스러워 졌다. 이때 1년도 못 버티고 무너진 왕조가 있을 정도로 수많은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했다.[4] 전진을 기준으로 16국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기도 한다.
오호십육국시대의 전개상의 특징은 화북 지역을 차지한 유목민 왕조들의 대립양상이 대체로 관중과 관동의 지역을 차지한 두 패권국들의 동서(東西) 대치상태로 이어지곤 했다는 점이다. 예컨데 초기(320년대)에는 흉노족의 전조와 갈족의 후조가 대립했고, 이후(350~360년대)에는 저족의 전진과 모용선비족의 전연이 대립했으며, 그 다음(380~390년대)에는 강족의 후진과 모용선비족의 후연이 대립했다. 마지막으로는 420년대에 이르러 흉노족의 북하와 탁발선비족의 북위가 대립했다.[5]
또한 이 시기에 강남 지역로 쫓겨내려간 동진 왕조 또한 수차례 북벌을 시도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동진의 권신이었던 환온은 성한을 정벌하여 촉한 일대를 수중에 넣었으며, 비록 고토회복의 야망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수차례의 군사원정으로 화북의 이민족 왕조들을 크게 위협하였다. 또한 동진이 낳은 불세출의 명장 유유는 모용선비족의 남연, 강족의 후진을 멸망시키고 일시적으로 한족의 고도였던 장안과 낙양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이 공로를 바탕으로 동진 왕조를 무너뜨리고 유송 왕조를 개창하기도 했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전개된 오대십국시대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시기는 완전히 다르다. 또한 대중적으로는 중국사에서의 남북조시대에 대한 인지도가 적어 삼국지 이후 300여 년의 분열기를 모조리 오호십육국시대로 설명해버리는 오류가 빈번하게 보인다.
*위진남북조 (魏晉南北朝, 220년–589년)는 중국 역사에서 300년 이상 지속된 중국의 분열기로, 위나라와 진나라, 그리고 오호십육국 시대, 남북조 시대를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역사 용어이다. 이 시기는 왕조 교체 속도가 빠르고 여러 정권이 공존하는 상황이 있었으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남북이 대치하는 구조를 보였다. 위진남북조는 220년 조비(曹丕)가 후한(東漢)의 황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위를 세운 것에서 시작하여, 589년 수 문제(文帝) 양견(楊堅)이 남진(南陳)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재통일하면서 끝났다. 총 369년에 걸친 이 시기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삼국 시대의 조위 (220~266): 220년 조비가 위를 건국한 뒤, 유비가 촉한을 선포하고 손권이 229년 오의 황제가 됨
2.서진(西晉) 시대 (266~316): 사마의의 후손 사마염이 266년 진을 건국한 뒤 280년 중국을 통일한 뒤의 시기
3.동진과 십육국 시대 (316~439)(염위와 서연 제외)
4.남북조 시대(남조와 북조의 대립, 439~589)

남북조 시대 초기 북조의 북위와 남조의 유송
위나라의 건국부터 서진의 건국까지 과정이 시기상으로 중국의 삼국 시대와 겹치기 때문에 이 시기를 삼국시대로 부르기도 하고, 서진과 동진의 교체기를 하나로 묶어서 이 시대를 전체적으로 양진(중국어: 兩晋)[1]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이 이름들은 위나라의 건국부터 수나라의 남북조 통일 전체를 다루는 명칭은 아니기 때문에 위진남북조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장강 북방 지역의 국가들인 위진남북조에 대비하여 동시기에 강남 지방에 수립된 동오, 동진, 유송, 남제, 양, 남진을 하나로 묶어 육조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