渭川田家-王維
渭川田家(위천전가)-왕유(王維)
斜陽照墟落(사양조허락),
窮巷牛羊歸(궁항우양귀)。
野老念牧童(야노념목동),
倚杖候荊扉(의장후형비)。
雉雊麥苗秀(치구맥묘수),
蠶眠桑葉稀(잠면상엽희)。
田夫荷鋤至(전부하서지),
相見語依依(상견어의의)。
即此羨閑逸(즉차선한일),
悵然吟式微(창연음식미)。
<위천 땅의 농가>
석양은 들녘의 농가를 비추고
좁은 마을길로 소와 양 돌아오네
노인은 목동을 걱정하며
지팡이 짚고 사립문에서 기다리네
꿩이 우니 보리에 이삭 패고
누에는 잠들어 뽕잎 드물다
농부들은 호미를 메고 서서
마주보며 정담을 이어간다
이를 보니 한가롭고 편안한 생활 부러워
서글피 시경의 식미(式微)를 읊조리네
[원문출처]: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通釋] 석양이 들판의 농가를 비추고 있고, 한 무리의 소와 양들이 깊고 구석진 골목으로 돌아오고 있다. 노인은 소와 양떼를 돌보러 나간 아이를 걱정하며, 사립문 옆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꿩이 우니 보리는 이미 패고, 누에가 깊이 잠든 때라 마을의 뽕나무 잎은 성글다. 농부들은 호미를 메고 길가에 서서 웃으며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 광경을 보니 그들의 편안하고 한적한 생활이 부러워,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解題] 왕유는 당 개원(開元) 29년(741) 가을부터 종남산에 기거하며 관직생활을 하기도 하고, 은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천보(天寶) 3년(744)에 이르러 근 삼년동안 일련의 산수전원시를 썼는데, 이 시는 장구령(張九齡)이 폄직당하고 이임보(李林甫)가 정권을 쥔 후에 왕유가 진퇴양난 속에서 관직세계를 떠나 조용한 전원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잘 반영하였다. 이 때문에 ‘歸(귀)’를 眼(안)字로 평하기도 한다. 시 전반에 걸쳐 시골 사람들의 진실함과 순박함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斜陽(사양) : 석양
*墟落(허락) : 들판의 농가, ‘落’은 촌락을 뜻한다.
*窮巷(궁항) : 매우 구석진 작은 골목으로, 여기에서 ‘窮’은 깊다[深]는 뜻이다.
*麥苗秀(맥묘수) : 보리 이삭이 패는 것이다.
*依依(의의) : 친절히 담화를 나누는 것으로, 정과 뜻이 깊고 돈독하여 차마 떠나가기 어려워하는 모양이다.
*卽此羨閑逸(즉차선한일) 悵然吟式微(창연음식미) : ‘式微(식미)’는 《詩經(시경)》 〈邶風(패풍)〉의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돌아가지 않는가?[式微式微 胡不歸]”에서 나왔으며, ‘式’은 발어사, ‘微’는 쇠락했다는 뜻이다. 이 시에서 마지막 두 구의 뜻은 전원생활을 흠모하여, 하루 빨리 관직을 떠나 전원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