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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嵩山作-王維

시뜨락 시정(詩庭) 2024. 7. 1. 06:51

歸嵩山作(귀숭산작)-王維(왕유)
清川帶長薄(청천대장박),
車馬去閑閑(거마거한한)。
流水如有意(유수여유의),
暮禽相與還(모금상여환)。
荒城臨古渡(황성림고도),
落日滿秋山(낙일만추산)。
迢遞嵩高下(초체숭고하),
歸來且閉關(귀래차폐관)。

맑은 내는 긴 수풀을 끼고 있고
수레로 한가롭게 가노라니
흐르는 물은 뜻이 있는 것 같고
저물녘에 새들은 서로 함께 돌아오는구나
황량한 옛 성 오래된 나루에 접해 있고
지는 해 가을 산에 가득하다
멀고 높은 숭산 아래
돌아가 장차 문 닫으리라

<원문출처> 歸嵩山作/作者:王維 / 全唐詩·卷126 /
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이 시는 왕유가 벼슬을 그만두고 숭산에 은거하는 시기에 쓴 작품으로 본다. 왕유는 21세 (開元 9년, 721)에 진사에 급제, 대악승(大樂丞)의 벼슬을 받았는데 얼마 안 되어 황제 앞에서만 공연할 수 있는 황사자(黃獅子) 춤을 사석(私席)에서 추게 했다 하여 제주(濟州:현재 山東의 치평(茌平) 방면)로 좌천된다. 유배지에서 6년을 보낸 후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왕유는 장안으로 돌아온다. 開元 22년(734) 왕유의 나이 34세 때 장구령이 중서령(中書令)이 되자, 장구령에게 자신을 발탁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 후 왕유는 우습유(右拾遺)로 발탁되어 조정에 복귀하게 된다. 장구령에게 편지를 보낸 후 우습유로 발탁되기 전에 숭산으로 들어가며 쓴 작품이 이 시다.


嵩山(숭산) : 현재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북쪽에 주봉(主峰)이 있는데 옛날에는 중악(中嶽)이라고 불렀다. 오악(五嶽)의 중앙에 위치하고 높아(옛사람들은 높이가 20里라 했다) 숭고(嵩高)라고도 한다. 외방산(外方山)이라고도 했는데 동쪽은 태실산(太室山), 서쪽은 소실산(小室山)이라 하며 총칭이 ‘嵩山(숭산)’이다. 태실산(太室山)에는 중악묘(中嶽廟)가 있고, 소실산(小室山)에는 유명한 소림사(少林寺)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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