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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湖-楊萬里

시뜨락 시정(詩庭) 2024. 3. 4. 13:58


曉出淨慈寺送林子方효출정자사송임자방
새벽에 정자사를 나와 임자방을 보내다

畢竟西湖六月中 필경서호유월중
風光不如四時同 풍광불여사시동
接天蓮葉無窮碧 접천연엽무궁벽
映日荷花別樣紅 영일하화별양홍

마침내 서호에도 유월이 와서
풍경이 다른 때와 많이 다르네
초록빛 연잎들 하늘에 닿아있고
한낮의 연꽃들 유난히도 붉어라

▶ 淨慈寺(정자사): 영은사靈隱寺와 함께 서호西湖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양대 사찰이다. ‘정자보은광효선사淨慈報恩光孝禪寺’라는 긴 이름을 줄여 부른 것이다.
▶ 林子方(임자방): 시인의 친구로 직각비서直閣秘書라는 벼슬을 살았다.
▶ 無窮碧(무궁벽): 연꽃의 초록 잎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넓은 곳을 덮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 別樣(별양): 특별히. 다르게. 시인은 자신의 다른 시 「立秋後一日雨天欲暮小立問月亭」에서 ‘雨後林中別樣涼, 意行幽徑不知長(비 내린 뒤 숲 속이 유난히 서늘해서, 생각 없이 걷는 길 길단 생각 못했네)’이라고 읊었다.

◈ 양만리楊萬里 [1127~1206]
자는 정수廷秀, 호는 성재誠齋, 길수吉水(지금의 쟝시성江西省 길수현吉水縣) 사람이다. 평생을 항금抗金에 바쳤으며 우무尤袤, 범성대范成大, 육유陸游와 함께 중흥사대시인中興四大詩人으로 불렸다. 소흥紹興 24년(1154) 진사가 되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된 뒤, 벼슬이 보모각학사寶謨閣學士에 이르렀다. 금金나라와 싸워서 잃어버린 땅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생 동안 ‘정심성의正心誠意’를 맘속에 품고 살았으며, 차 마시기를 대단히 즐겨 했다. 뒷날 한탁주韓侂胄의 힘에 밀려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은거하는 15년 동안 문을 나오지 않았다. 《성재집誠齋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