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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山-慧諶禪師

시뜨락 시정(詩庭) 2025. 5. 26. 20:51

遊山(유산)-慧諶禪師(혜심선사)
산으로 놀러 다님

제37회 인천서예대전 초대작가전에서


臨溪濯我足 임계탁아족
개울에서 발을 씻으며
看山淸我目 간산청아목
山을 바라보니 내 눈이 맑아진다.
不夢閑榮辱 불몽한영욕
부질없는 榮辱(영욕)은 꿈꾸지 않아
此外更無覓 차외갱무멱
이번 밖에 다시 찾을 것이 없도다.

*眞覺國師(진각국사) (1178~1234. 羅州 和順縣 出身. 俗姓 崔. 號 無衣子. 字 永乙. 法諱 慧諶. 諡號 眞覺國師)
眞覺國師는 고려 때 스님으로 지눌 普照國師 弟子이고 禪門拈頌 30권을 지은 분이기도 하다.
고려후기 대선사, 단속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성은 최씨(崔氏).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법명은 혜심(慧諶). 전라남도 나주 출신. 아버지는 완(琬)이며, 어머니는 배씨(裵氏)이다.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어,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하면서 수선사의 교세를 확장하였다.
* 생애와 활동사항 :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출가하기를 원하였지만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았다. 1201년(신종 4)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으나, 다음 해 어머니가 죽자, 당시 조계산(曹溪山)에서 수선사를 만들어 교화 활동을 하고 있던 지눌(知訥)에게 가서 어머니의 재(齋)를 올린 다음,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힘써 정진하였으며, 지눌은 혜심의 재능을 아꼈다.
1210년 지눌이 입적(入寂)하자 혜심이 수선사로 돌아가 개당(開堂)하였다. 1212년 강종(康宗)이 수선사를 증축시키고 불법을 구하므로 그가 『심요(心要)』를 지어 올렸고, 당시 문하시중최우(崔瑀)는 그에게 두 아들을 출가시켰다. 고종(高宗)은 왕위에 올라 혜심에게 선사(禪師)에 이어, 대선사를 제수하였으며, 1220년(고종 7)단속사(斷俗寺) 주지로 명하였다.
1234년 6월 26일에 문인들을 불러 여러 가지 일을 부탁한 뒤 입적하였다. 나이 56세, 법랍 32세였다.

문인에는 몽여(夢如)·진훈(眞訓)·각운(覺雲)·마곡 등이 있다. 저서로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30권, 『심요』 1편,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1권,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 1편,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2권, 『금강경찬(金剛經贊)』 1권, 『선문강요(禪門綱要)』 1권이 있다.

* 상훈과 추모 : 고종은 진각국사(眞覺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부도(浮屠)의 이름을 원소지탑(圓炤之塔)이라 사액(賜額)하였다. 부도는 광원암(廣遠庵) 북쪽에, 이규보(李奎報)가 찬한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는 전라남도 강진군월남산 월남사(月南寺)에 각각 세워졌다. 현재 비문은 잔비(殘碑)만이 전해 오고 있으며, 『동국이상국집』, 『동문선』, 『조선금석총람』 등에 그 글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