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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夜惜別-鄭澈

시뜨락 시정(詩庭) 2025. 5. 8. 06:01

客夜惜別-鄭澈

1.
不是耽杯酒 (불시탐배주)
應緣愴別情 (응연창별정)
明朝送君後 (명조송군후)
風雨滿孤城 (풍우만고성)

술이 탐나서가 아니라
이별의 정이 슬퍼서라오
내일 아침 그대 보낸 후엔
비바람이 외로운 성에 가득 하리

<나그네가 밤에 이별을 아쉬워하며>
-송강 정철-

*미술전에서 작품 詩句 에...

인천미술한마당 페스티벌 전시작품중 인천문화예술회관, 2025/05/03-08

2.
孤燈落寒燼 (고등락한신)
缺月送淸光 (결월송청광)
把酒復怊悵 (파주부초창)
論情誰短長 (론정수단장)

외로운 등불 차가운 재에 떨어지고
이지러진 달은 맑은 빛을 보내는구나.
술잔 잡고 다시 슬퍼하노니
정을 논한다면 누가 더 길고 짧을까.

3
我豈輕離別 人無惜去留
渾疑竊履客 敢借代言牛
夜迷長道江 冰閣小舟雪
干戈死生際 獨立萬端憂

내 어찌 이별을 가벼이 여기리
사람들이야 가고 읆을 애석치도 않지만.
신 훔치는이(좀도둑)로 의심하는데
감히 대신 말하는 소를 빌려올까
밤에 눈 내리어 먼 길은 희미하고
강은 얼어 작은 배를 멈추게 했나니.
난리라 죽고 사는 이때에
홀로 서서 만가지를 근심하누나.

*竊履(훔칠 절.밟을 리/신 리)
-맹자에 '혹인이 개가 신을 물고 간줄 모르고 이웃에 사이가 좋지 않은 이를 의심한 고사'가 있다.

*정철(鄭澈, 1536년 12월 18일(음력 12월 6일)~1594년 2월 7일(1593년 음력 12월 18일))은 조선의 시인이자 문신, 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또는 迎日), 자는 계함(季涵)이고, 호는 송강(松江) · 칩암거사(蟄菴居士)이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총마어사(驄馬御史), 동인백정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돈령부 판관(敦寧府 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沉)의 아들이며, 인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의 남동생이다. 156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의정부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인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국문을 주관하던 형관으로 사건 추국을 담당하였으며, 기축옥사 수사 지휘의 공로로 추충분의협책평난공신(推忠奮義恊策平難功臣) 2등관에 책록 되었다. 훗날 심문 과정에서 동인에 대한 그의 처결이 지나치게 가혹하여 '동인백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동인들로부터 원한을 많이 샀다. 또한 서인의 정권 재장악을 위해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세자 건저문제(1591)를 계기로 귀양에 위리안치되었고, 임진왜란 직후 복귀하였다. 전란 초기에 양호체찰사 직을 수행하였으나, 알콜중독으로 업무를 소홀히 하다가, 명나라에 사은사로 가서는 일본군이 철수했다는 가짜 정보를 올린 일로 사직하였다. 이후 강화도에 우거하던 중 사망하였다.

당색으로는 서인의 지도자였고, 이이, 성혼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송순 · 김인후 · 기대승(奇大升) · 임억령 · 양응정(梁應鼎)의 문인이다. 《관동별곡》(關東別曲) 등 가사와 한시를 지었으며, 당대 시조문학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