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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李匡呂

시뜨락 시정(詩庭) 2025. 3. 13. 17:33

梅(매)-이광려(李匡呂)

滿戶影交脩竹枝(만호영교수죽지)
대나무 그림자 길게 드리워 집안에 가득 차고
夜分南閣月生時(야분남각월생시)
밤 깊어 남쪽 사랑에 달이 떠오를 때
此身定與香全化(차신정여향전화)
이 몸 정녕 그 향기에 흠뻑 젖어
嗅逼梅花寂不知(후핍매화적부지)
매화에 다가가 향기 맡아도 알 수가 없네

*월암 이광려(月巖 李匡呂, 1720년 ~ 1783년)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실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재(聖載), 호는 월암(月巖), 칠탄(七灘)이다.
그는 인품도 훌륭했고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또 문장이 뛰어나 따르는 제자가 많았고, 사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이광려의 문장에 대해서 이만수(李晩秀)는 “국조(國朝) 300년의 문교를 받아 이광려 선생을 낳았다.”라고 하며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그의 뛰어난 문장 실력은 그의 문인(門人)에게 그대로 전해져 신대우(申大羽)를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한편, 그는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하던 당시의 시대 흐름 속에서 일찍부터 책을 통하여 고구마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습득했다. 1763년(영조 39)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엄(趙曮)이 대마도로부터 고구마를 들여오자 곧 재배에 착수하였으나 기술이 부족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시도는 당시 동래부사(東萊府使)였던 강필리(姜必履)에게 자극을 주어 고구마 재배에 성공을 거두게 한 밑바탕이 됐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 길이 없으나 같은 시대에 살았던 문인들의 평가를 통해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서로는 이참봉집(李參奉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