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숲 아래서
시/나태주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 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